거친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 주는 영화가 있다. 짙게 깔린 어둠 속 차가운 밤공기, 뿌옇게 흩어지는 담배연기와 독한 위스키 한 모금. 떨어지는 낙엽과 함께한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의 키스. 거친 차바퀴 소리에 뒤따르는 매캐한 연기. 다급한 총성과 황급히 뛰어가는 발자국 소리. 어떤 영화가 상상되는가? 이 모든 요소들은 일명 ‘검은 영화’라 불리는 느와르 영화의 아이콘들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 ‘제3의 사나이’는 1949년 칸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명성과 흥행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필름누아르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채 가시지 않은 오스트리아 비엔나. 연합군 4개국이 공동으로 치안을 유지하고 있는 곳에 미국인 추리소설가 마틴스가 도착한다. 20년지기 죽마고우인 해리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마틴스. 그러나 비엔나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친구인 해리가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해리의 지인들을 통해 친구의 마지막을 듣던 마틴스는 이상함을 감지한다. 한 사고를 둘러싼 증언들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던 것이다. 이에 마틴스는 친구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한다. 그리고 그 비밀의 핵심엔 행방이 묘연한 제3의 사나이가 있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의문의 제3의 사나이의 행방을 쫓던 중 마틴스는 죽었다고 생각했던 해리와 마주하게 된다. 사실 해리는 불량 페니실린 암거래로 인해 경찰의 용의선상에 있었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가짜 장례식으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 채 숨어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틴스는 해리에게 자수를 권유하지만 그는 죄에 대한 반성도, 뉘우침도 없이 당당하고 떳떳했다. 이에 결국 20년 우정보다도 정의를 선택한 마틴스는 경찰에 협조해 그의 체포 작전에 협조한다. 결국 해리는 자신을 향해 좁혀 오는 수사망을 견디다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마틴스는 다시 한 번 친구의 장례식을 찾아가게 된다.
영화 ‘제3의 사나이’가 필름누아르의 고전으로 기억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형식 면에 있어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감각적인 흑백 화면, 사선으로 기울어진 영상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어지러운 도시의 뒷골목을 누비는 범죄자들의 비장미, 후반부에서 펼쳐지는 하수구 추격신 등은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두 번의 세계대전이 남기고 간 황폐함과 더불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그 기준에 대한 질문도 남기고 있다. 범죄영화의 결말은 대부분 악이 처벌을 받으며 끝을 맺는다. 사회는 정의를 구현하고 다시금 안정적인 궤도에 들어서면서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작품도 권선징악의 구도로 마무리되는 것은 같다고 하겠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백미로 손꼽히는 마지막 장면은 또 다른 여운을 남기며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비록 정의의 편에 섰다고는 해도 20년 우정을 버린 대가로 그가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흩어지는 나뭇잎과 점점 멀어지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만이 빈 화면 위에 남아 있을 때 우리의 그곳에서 진한 외로움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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