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철드는 시기도 늦춰진 것일까? 요즘 사람들은 대다수가 실제 나이보다 저연령화된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 중인 40대 남성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TV 드라마를 보더라도 중년의 연애 방식이라는 것이 20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세월을 빗겨간 동안외모에 여전히 꽃미남,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직업을 두루 갖춘 이들에게 인생 최대의 문제는 ‘사랑’뿐이다. 그 이외의 것들은 언제나 순항 중이다. 재미는 있지만 공감대가 떨어진다. 오늘 소개할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 또한 철이 덜 든 등장인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그러나 볼거리보다는 여성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파고드는 전략으로 공감대를 높였다.

만나는 남자는 나쁜 남자, 직장에서도 해고통지를 받기 일보 직전의 애니. 월세 낼 돈이 없어 언제 쫓겨날지 알 수 없는 답답한 삶 속에서 유일한 웃음이 돼 주는 이는 평생지기인 릴리안뿐이다. 그러나 릴리안의 결혼 소식은 그녀를 또 다른 불안으로 이끈다. 노처녀 친구의 결혼은 분명 웃으며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웃어야 할 입꼬리는 점점 아래를 향한다. 게다가 성대하게 치러지는 약혼식은 애니를 더욱 위축들게 한다. 뿐만 아니라 애니에게 친구는 오직 릴리안뿐이건만, 릴리안은 새로운 친구가 많았다. 특히 헬렌은 릴리안과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며 애니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릴리안의 결혼 준비를 도와주기로 한 애니. 그러나 헬렌과 사사건건 부딪히며 신경전을 벌인다. 허나 꼬리가 아홉 개 달린 구미호처럼 고단수인 헬렌에게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실수 연발, 게다가 자신의 못난 자격지심까지 합쳐져 애니는 급기야 릴리언과 크게 다투고 절교선언까지 하게 된다. 불행은 언제나 꼬리를 물고 온다고 했던가! 나이 마흔줄에 직장에서도 해고당한 애니는 결국 어머니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깊은 수렁에 빠져든다. 삶이 더는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자조 섞인 냉소 속에, 그녀는 자신 안으로만 움츠러든다. 그리고 릴리언의 결혼식 당일. 끝까지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고 못난이 짓을 벌이는 애니. 평생지기와의 우정은 그렇게 종지부를 찍는 것일까?
영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은 유머와 농담 속에서도 탄탄한 이야기와 공감대를 이끌어 낸 작품이다.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들과 거침없는 대화를 들으며 폭소하다가도 어느덧 우리는 주인공 애니와 함께 인생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어른이 돼 있어야 할 나이임에도 여전히 불안한 십대처럼 방향을 잡지 못한 애니.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쌓여도 그녀에게 세상은 막막하고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다. 번뇌 덩어리로 살아가며 바닥을 모르고 끊임없이 침전하는 자신의 애달픈 팔자를 원망하고 자신을 몰라주는 세상과 타인을 탓하던 애니. 그러나 정작 자신의 인생이 답답했던 이유는 알을 깨고 밖으로 나오지 못했기 때문임을 애니가 알아갈 때, 우리도 그 깨달음 속에서 용기와 희망을 보게 된다. 영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은 철이 덜 든 마흔줄의 미혼 여성의 성장담을 풀어낸 작품으로, 배꼽 빠지게 웃겨 주면서도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매력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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