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 올림픽에서 레슬링은 경기당 2분 3라운드로 진행된다.

자유형에서는 각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결판이 나지 않으면 30초간의 클린치 경기를 치른다.

양 팀 벤치에서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는 등 경기가 지연되는 경우를 계산에 넣어 길게 잡더라도 15분 정도면 승자를 가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결승전까지 5경기를 치르는 토너먼트가 하루에 2~3체급씩 열릴 수 있다.

그러나 올림픽 역사에는 이런 '상식'과는 정반대로 한 경기에 꼬박 한나절이 걸린 적이 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미들급에서 일어난 일이다.

준결승에서 맞붙은 마르틴 클라인(러시아)과 알프레드 이시카이넨(핀란드)은 무려 11시간40분 동안 육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힘 대결을 벌였다.

당시 레슬링은 예선 토너먼트에서는 60분의 시간제한이 있었지만 메달이 걸린 결승 라운드는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 '끝장 승부'로 진행됐다.

마침 클라인은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에스토니아 출신이었고 이시카이넨의 조국 핀란드도 러시아의 통치 아래에 있었으나 특별히 핀란드 국기를 달고 나갈 수 있도록 허가받은 터였다.

두 선수 모두 자국에 금빛 낭보를 전하겠다는 의욕이 넘쳤으니, 치열한 접전이 예고된 셈이었다.

둘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 경기장에서 30분마다 잠시 휴식을 취해 가며 12시간 가까이 사투를 벌였다.

승리는 클라인에게 돌아갔지만, 클라인 역시 웃을 수는 없었다.

이시카이넨과의 경기에 힘을 소진한 클라인은 다음 날 예정된 결승전을 포기해야 했고, 금메달은 '어부지리'로 클라에스 요한손(스웨덴)에게 돌아갔다.

같은 대회 그레코로만형 헤비급 결승에서는 안데르스 알그렌(스웨덴)과 이바르 보엘링(핀란드)이 9시간 경기 끝에 승부를 가리지 못해 공동 은메달을 받은 일도 있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은 레슬러들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였던 셈이다.

클라인과 이시카이넨의 11시간40분 경기는 역대 레슬링 최장 시간 경기로 기록에 남았고, 이런 가혹한 경기는 이제는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레슬링의 경기 시간은 당시 이후로 점점 짧아져서 이제는 폴을 따내지 못해도 최소 4분이면 경기를 마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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