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향해 뜨거운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언제입니까? 상황이 슬퍼서 흘리는 것도, 세상을 향한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해 흘리는 눈물. 그 눈물의 순간은 일생을 통틀어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흔하지 않은 경험이다. 자신에게 쏟아내는 눈물은 삶을 통해 스스로 터득한 진정한 깨달음을 의미하기에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귀하고 값지다. 이토록 뜨거운 눈물은 그간의 인생을 소화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종의 소화제와도 같다. 권투선수로서 최고의 위치에 서고자 했던 제이크 라 모타. 혹독한 자기관리와 승리를 향한 집념은 그에게 빛나는 챔피언 벨트를 안겨 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인생은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한 다음에야 그의 것이 됐다.

미들급의 제이크 라 모타의 별명은 ‘성난 황소’이다. 이탈리아 이민자 출신의 제이크는 성공을 위해 권투를 시작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그가 믿는 단 한 가지는 자신의 맨주먹이다. 링 위에서 주먹을 날려 상대방을 제압하고 승리를 쟁취하듯 삶의 방식도 성공과 실패, 얻을 것이냐 빼앗길 것이냐의 극단의 갈림길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성공과 성취였다.
거친 콧김을 뿜어내며 세상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그에게 실패란 원래부터 없는 듯 보였다. 그의 강펀치 앞에 선수들은 무릎을 꿇었고, 링 위의 승자에게 부와 사랑은 당연히 따라오는 포상금처럼 보였다. 그는 승자에게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검은 머리에 무뚝뚝하고 거친 성격의 아내 대신 눈부시게 아름다운 금발머리의 어린 여인 비키를 새로운 아내로 맞아들인다. 제이크에게 있어 아름다운 아내는 승자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금빛 트로피와도 같았다.
그러나 패자가 된다면 모든 것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그를 더욱 난폭하게 만들었다. 승리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아내를 향한 밑도 끝도 없는 의처증은 강도를 더해 갔다. 세계 챔피언이 되기란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다. 체급 유지를 위해 단 한 모금의 물조차도 마실 수 없는 극한의 갈증과 배고픔, 운동 외 불필요하게 소비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조차 허락할 수 없는 그의 삶. 제이크 라 모타는 분명 넉넉한 경제력과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지만 항상 배가 고팠으며 아내는 멀어질 듯 불안하기만 했다.
게다가 세상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운동만 잘한다고 챔피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타이틀매치의 기회를 얻기 위해 그는 결국 권력에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승부 조작에 가담한 대가로 챔피언 벨트를 차게 된다. 그렇게 정상을 밟은 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빠른 속도로 추락의 길뿐이었다. 그간의 절제를 한순간에 풀어버린 그는 음식과 술, 여성을 탐하며 무절제하게 살아간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을 땐 아내도, 형제도, 수중의 돈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은 초라한 자신이 시커먼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음을 직시하게 된다. 콘크리트 벽에 머리를 찧으며 “왜,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라며 소리치던 제이크는 얼굴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과 함께 지난 세월을 돌아본다.
실존 인물을 다룬 전기영화들의 대부분은 난관을 이겨낸 주인공이 정상에 우뚝 서는 영웅적인 이야기로 전개되는 반면, 이 작품 ‘분노의 주먹’은 거칠고 쓸쓸한 사나이 ‘제이크 라 모타’의 실패와 몰락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전하는 실패는 끝이 아니다. 아픔과 눈물을 통해 그간 모르고 있었던 삶의 이면을 보게 되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감동과 희망을 보게 된다. 인생은 살아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뒤늦은 깨달음을 주는 뜨거운 눈물 속에는 반성과 후회의 무게만큼이나 행복의 무게도 녹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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