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삶을 대하는 모습은 그 사람의 미래를 어느 정도 가늠케 한다. 미래는 멀리 있는 것 같아도 꿈을 꾸며 살아가고 늘 그 꿈을 향해 노력한다면 어떠한 모습으로든 그 미래는 현재가 되기 마련이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다고 새 삶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세상 어느 곳에서든 그 인생은 별반 다를 게 없다. 30대 초반에 남편을 잃고 말썽쟁이 초등학생 아들을 둔 엘리스도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면 새 삶이 열릴 거라는 기대를 품었다. 180도 달라지지는 않는다 해도, 최소한 조금이나마 다른 삶이 펼쳐질 거라 믿었다.

소녀 엘리스의 꿈은 가수였다. 어른이 돼 그녀는 작은 클럽에서 노래를 하며 가수의 꿈을 이루지만 결혼과 함께 그 생활도 막을 내린다. 순종적인 성격의 엘리스는 마초적인 남편의 그늘 아래 숨 한 번을 제대로 못 쉬고 살아간다. 그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남편을 잃은 그녀는 가장이 된다. 생계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노래를 떠올린다. 다시 가수가 되기 위해 그리고 생계도 책임지지 위해 그녀는 아들과 함께 길을 나선다. 맨 처음 도착한 곳은 피닉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여러 클럽들을 전전하며 면접을 보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얻은 일자리. 그러나 아들과 함께 생활하기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힘든 그녀에게 구원처럼 나타난 ‘벤’이라는 남자. 그는 그녀를 웃게 해 줬다. 하지만 행복의 순간은 짧았다. 자상한 모습 뒤에 감춰진 벤의 비열함과 폭력성을 알게 된 엘리스는 투손이란 지역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그녀가 얻은 일자리는 가수가 아닌 웨이트리스. 현재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한심한 나머지 눈물 마를 날이 없이 살아가지만, 시간이 흘러 점점 엘리스는 안정을 찾아간다. 일하는 동료들과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작은 것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알아가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또다시 사랑이 찾아왔다. 목장을 운영하는 데이빗. 그가 그녀에게 청혼을 하며 이곳 투산에서 함께 살자고 말한다. 이에 엘리스는 망설인다. 자신의 꿈을 접고 가정을 꾸리며 안정적으로 살아갈 것인지, 혹은 사랑을 버리고 꿈을 향해 발돋움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꿈을 쫒는 삶처럼 아름답고 희망찬 것은 없다. 그러나 모든 현실이 꿈꾼 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꿈은 때론 좌절될 때도 있고, 뜻밖의 방향으로 우회할 수도 있으며,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혀 부득이한 선택 혹은 타협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 순간도 많이 있다. 여성의 삶을 섬세하게 다룬 이 영화 ‘엘리스는 이제 여기 살지 않는다’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작품으로 꿈을 꾸면 모든 미래는 찬란하게 열려 있다는 비현실적인 사탕발림보다는 현실에 무게중심을 둔 작품이라 하겠다. 꿈과 현실,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마찰과 일상을 섬세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엘리스의 눈물과 한숨, 웃음과 노랫소리 등을 생생하고 자연스럽게 담아내 엘리스의 꿈을 함께 응원하게 하고 그녀의 고민 또한 함께 생각하게 한다. 비록 영화의 결말이 다소 타협적인 모습으로 마무리돼 페미니즘 비평가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기도 했지만, 엘리스의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꿈꾸는 미래가 지금 당장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해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면, 미래는 언제나 꿈꾸는 자에게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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