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두환 경기본사 사회2부

 부천시 W동에 사는 이모(75)할머니는 저녁 잠자리에 든 후 날이 새기만 기다리다 새벽 5시면 일어나 부리나케 인근 공원으로 운동하러 나간다. 말이 운동이지 며느리 눈치 보느라 집을 빠져나오는 게 맞는 말이다. 몇 해 전 며느리 힘을 덜어 준다고 도왔던 집안 일이 오히려 낭패보는 일이 돼 버려 그 후론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 이 할머니는 아침 한 술 뜨고는 곧바로 동네 노인정으로 향한다. 저녁 늦도록 이곳에서 자기의 처지와 비슷한 노인들과 어울리는 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S동에 사는 서모(81)할아버지의 하루는 시내 백화점과 대형 마트 등을 다니며 이곳저곳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윈도쇼핑을 하는 일이 소일거리다.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가 집을 비우면 딱히 할 일이 없어 이 같은 하루는 매일 반복되고 있다. 동네 노인정이라도 방문해 여느 노인들과 함께 어울릴 만도 하지만 사람 접촉이 그리 탐탁지 않은 서 할아버지의 성격상 그도 쉽지는 않다.

부천시 노인회의 한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542만 명으로 지난 2005년에 비해 24.3% 증가하는 현실로 보아 우리 주변에는 이 같은 처지의 노인들이 많다”며 “노인들이 가족 등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여생을 마지못해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노인인구 비중이 11.8%에서 2040년에는 32.4%로 늘고 2060년에는 40.1%에 이르러 평균 수명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80.7세로 늘어날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늘어가고 있는 고령화 추세는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에 끼칠 문제도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구 10만 명당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81.9명으로 OECD 평균인 33.5명보다 무려 2.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난 현실을 주목해야 할 상황이다.

지역에서 효자로 소문났던 부천시 전 시의원 K(74)씨는 “노인치매도 고령화 시대 문제에 한몫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올해 상반기까지 약 52만 명이 넘는 노인이, 앞으로 2020년에는 70만 명의 노인이 치매를 앓을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어 가족 간 불화는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을 당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른다고 귀띔한 이유를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다.
노인들이 여생을 건강하게 지내게 하는 길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와 젊은 층의 몫이 아닐까. 송강 정철의 ‘훈민가’ 중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인들 무거울끼/ 늙기도 서럽거늘 짐조차 지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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