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눠 보자면,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미의 기준은 주관적인 것이라서 나에게 재미있는 영화가 타인에게도 재미있으란 법은 없으며,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의 추천으로 봤다 해서 나에게도 그와 똑같은 재미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니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보는 이를 둘러싼 감정과 정서에 따라 보고 느끼는 재미는 다양하기 마련이다. 최종적으로 모든 영화는 관객의 것이다. 비록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감독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극장에 선보이는 순간, 작품은 관객의 영화로 새로 태어난다.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 ‘노트북’은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사실 사랑처럼 진부한 소재도 없겠지만 이보다 더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또 있을까!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사랑처럼, 이 작품 ‘노트북’도 냉철한 이성보다는 가슴을 열고 봤을 때 감동이 더욱 커지는 작품이라 하겠다. 가을 단풍처럼 붉게 물드는 사랑을 만나보자.
17살 앨리와 노아는 첫눈에 반한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빠른 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든다. 성격, 취향, 자라온 환경 등 무엇 하나 공통점이 없어 다툼이 빈번했지만, 토라진 채 돌아섰다가도 이내 서로가 그리워 돌아온 길은 한걸음에 달려갈 만큼 둘의 사랑은 뜨거웠다.
그러나 사랑과 장애물은 비극적 단짝처럼 함께 다니는 법. 이들의 사랑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두 사람을 가로막는 사랑의 장애물은 가정환경이었다. 여름 한철, 부모님과 교외로 피서를 온 앨리는 명문가 외동딸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왔다. 노아 역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앨리의 부모님 기준으로 봤을 때에는 한참 못 미쳤다. 목재소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일 년 내내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더라도 앨리네 집안의 일주일치 생활비에도 못 미칠 듯한 경제력의 차이. 결국 두 사람은 집안의 반대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노아는 앨리의 가슴에, 앨리는 노아의 가슴속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서로의 소식을 알 길이 없는 두 사람은 찬란하게 반짝이던 여름날의 사랑을 추억상자 속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운명의 끈은 두 사람을 묶어놓고 있었다. 다시 재회하게 된 이들은 여전히 서로를 향해 뛰는 가슴을 확인한다. 그러나 앨리는 이미 약혼자가 정해져 있는 상태였다. 이번에도 주변 상황과 환경들이 이들의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 듯 보였다. 두 사람은 다시 헤어져 서로를 그리워하며 더 오랜 시간을 견뎌야만 하는 것일까?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중단하자 한 할머니가 계속 책을 읽어 달라며 어린아이처럼 조르고 있다. 할아버지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 두 노인은 바로 노아와 앨리였다. 50여 년의 시간이 흘러 함께 노년을 맞이한 두 사람. 그러나 이제 앨리는 노인성 치매에 걸려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노아는 자신들이 사랑했던 날들을 기록해 둔 앨리의 일기장을 매일 읽어주며 그녀의 기억이 되살아나길 간절히 기원했다. 치매에 걸린 앨리는 노아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낯선 사람 대하듯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았지만, 노아에게 그녀는 언제나 영원한 사랑이었다.
영화 ‘노트북’은 평생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하며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을 보여 주는 작품으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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