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중국·러시아와 일본과의 영토 분쟁은 여전히 뜨거운 쟁점으로 남아 있다. 이는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한 후 과거 식민지 영토의 귀속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독도와 댜오위다오, 북방영토 등 동아시아를 둘러싼 영토 분쟁에 있어서 일본은 국제법만을 내세워 해결하려 들지만 일본의 이러한 입장은 분쟁국면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분쟁 해결의 출발점은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화해를 실현하는 데 있다. 불편하고 어두운 과거는 덮어버리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불편한 기억일수록 햇빛 아래 또렷이 드러나길 열망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 위에 발을 딛고 사는 우리는 그것을 모르는 척 살아갈 수만은 없다. 영화 ‘사라의 열쇠’는 2차 세계대전의 아픈 과거를 되짚어보는 영화로 프랑스에서 일어난 유태인 학살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역사 앞에 진정 어린 사죄를 구하는 작품이다.
1942년 7월,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은 사라의 가족들을 체포한다. 그들이 체포되는 이유는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10살 소녀 사라는 경찰의 눈을 피해 어린 남동생을 벽장 속에 숨긴다. 그리고 조금 뒤에 꼭 열어 줄 테니 꼼짝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후 경찰에게 체포된 사라는 벽장 열쇠를 손에 쥔 채 부모님과 함께 벨디브 경륜장에 이송된다. 당시 프랑스 경찰은 1만 명이 넘는 유대계 프랑스인을 체포해 경륜장에 가둬 버린다. 이후 남녀와 성인, 어린이로 분류된 유대인들은 각각 수용소로 이송된다. 그 과정에서 사라는 부모님과 헤어지게 된다. 어린이 수용소에 갇힌 사라는 극한의 허기와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파리로 돌아가 동생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텨 나간다. 그리고 기적처럼 탈출에 성공한 사라는 이후로도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후 옛 집에 도착하지만, 사실 동생을 꺼내 줄 시간은 오래전에 지나버렸다. 뒤늦게 연 벽장 속에서 사라는 역사의 비극을 직시한다.
그리고 2009년. 미국인 여기자 줄리아는 1942년 프랑스 유대인 집단 체포사건에 대해 취재하던 중, 자신과 이어져 있는 사라의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사라의 발자취를 따라 얽힌 실타래를 풀어갈수록 줄리아는 자신의 가족들이 역사의 비극과 닿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녀는 사라의 일생을 통해 비록 전쟁은 끝났어도 그것이 남긴 비극과 마음의 고통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사라의 열쇠’는 1942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유대인 일제 검거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당시 어린아이를 포함한 1만여 명의 유대인들은 프랑스 경찰에 의해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으로 이송,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인 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과거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당시 역사적 상황이 나치 점령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 대신, 프랑스인의 손으로 직접 저질러진 이 끔찍한 사건에 대해 프랑스 경찰과 공무원이 개입된 것을 인정하고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 사과했다. 이후로도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들은 2차 대전과 유대인 학살에 관련된 영화들을 통해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고 다양한 차원에서 당시의 비극을 위로하고 사죄하고 있다. “한 번 사과했으니 된 것 아니냐?” 혹은 “지나간 과거, 좋지 않은 기억을 자꾸 떠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아픈 채로, 슬픔을 묻어 둔 채로 남겨 두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는 위로와 사죄, 그것이 상처 입은 사람들, 과거, 역사와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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