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는 끔찍한 범죄들로 들끓고 있다. 어린이 성폭행 사건과 시신 훼손 및 유기 등의 흉악범죄가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형량 강화와 엄격한 법 집행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의 범죄 수법과 이후 시신 유기 등의 상황이 언론을 통해 자세히 보도되면서 법정 최고형인 사형 구형에 대한 국민 정서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중에 일명 ‘오원춘 사건’으로 불리는 20대 여성을 납치·살해한 오원춘에게 1심에서의 사형 판결이 2심에서 무기형으로 감형된 부분이나, 관광지에서 한 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남성에게 사형이 아닌 23년의 실형이 선고된 것에 대해 형량이 가볍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범죄자에게 그 죗값에 해당하는 형벌을 집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사형’이라는 법정 최고형의 구형은 신중히 고심해 봐야 할 문제인 듯싶다. 오늘 소개할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최고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살인범 정윤수는 3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했을 뿐 아니라 금품을 훔친 죄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이후 자신을 변론조차 하지 않은 채 모든 범죄 사실을 자백하면서 그는 사형을 선고받는다. 모니카 수녀님은 이런 최고수들과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났고, 그 자리에 자신의 조카 유정을 데리고 나간다. 유정은 세 번이나 자살 시도를 한 철없어 보이는 30대 중반의 대학 강사로 원망과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세상을 저주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저주의 종착점은 언제나 자신의 어머니였다.
죽음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만나게 된 두 사람. 그러나 서로 할 말은 없었다. 어느 날 윤수는 모니카 수녀와 유정뿐 아니라 자신을 만나러 온 또 다른 할머니 한 분과도 마주하게 된다. 그는 다름 아닌 자신이 살해한 여인의 어머니였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자신의 딸을 죽인 윤수를 증오하며 죽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도 그 마음이 불편해 결국엔 윤수를 용서하러 왔다는 할머니는 가끔 만나러 오겠다는 말과 건강하라는 인사를 건네고 발길을 돌린다. 이에 윤수는 무서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 그리고 고마운 감정이 한데 교차돼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낸다. 이처럼 이 영화는 감당할 수 없는 미움과 분노의 감정을 용서와 화해의 모습으로 용해한다. 이후 유정도 자신의 어머니를 미워했던 마음을 풀고 화해를 시도하며, 윤수 또한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을 버리자 주변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누구보다 자신을 용서하기 힘들었을 그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윤수는 자신의 비참했던 성장과정에 대한 모든 분노를 내려놓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반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겨울이 그에게 허락된 마지막 시간이었다. 그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성경의 누가복음서에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라는 말이 있다. 사실 이 말은 쉽게 납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천에 옮기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미움과 증오로 원수를 대한다면 그 질긴 악연은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반면 대단히 어려운 일임이 분명하나 용기를 내어 사랑과 용서로 다가선다면, 그 진심은 분명 상대방에게 뜨거운 울림을 줄 것이다. 사랑의 마음, 그것만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공지영 씨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용서와 화해의 의미와 함께 사형제도에 대해 ‘그것이 최선입니까?’라는 질문도 조심스레 던지고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