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지향점은 감독마다 다양하다. 독일 뉴 시네마의 기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은 소외된 자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주노동자, 가난한 사람, 성적 소수자 등이 그가 주목한 사람들이다. 21세에 영화계에 데뷔해 37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40여 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한 파스빈더는 끊임없이 사랑에 집착했다.
그가 그린 소수자들은 모두 사랑에 목마른 애정결핍자들이었다. 영화 속 인물들이 바란 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 주는 사랑이었고, 그것만 충족된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는 소박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사랑만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 믿는 순수주의자는 아니었다. 영화 속 모든 비극은 사랑 저 너머의 현실에 있음을 감독은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영화 ‘사계절의 상인’은 그의 초기 작품으로 주변과의 관계에서 점점 소외돼 가는 한 남자의 불행한 삶을 다루고 있다.

장남 한스는 천덕꾸러기다. 가정에서 그의 지위가 이렇게 추락한 이유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스는 과일행상을 하며 먹고산다.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과일을 파는 한스는 넘치지는 않아도 필요한 만큼 벌어가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과일행상이란 직업은 그의 어머니에게 창피함 그 자체였다. 어머니에게 받은 천대는 가족 모두에게 전염병처럼 확산됐다. 누구 하나 그를 따뜻하게 바라보지 않았고, 그가 실수라도 저지르면 이때다 싶어 공격하기에 바빴다. 그런 분위기는 한스를 술과 폭력으로 내몰았고, 급기야 그는 아내를 폭행하기에 이른다.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 앞에 한스는 심장쇼크로 쓰러지게 된다. 회복 후에는 힘든 일과 술을 멀리하라는 의사의 권유로 한스는 직접 행상을 하는 대신 사람을 고용하게 된다. 뜻밖에도 장사는 날로 번창했고 그의 어머니도 아들이 행상이 아닌 사업을 한다며 자랑스러워 했다. 모처럼 가족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게 됐지만 한스는 날이 갈수록 무기력해진다. 자신의 존재감을 상실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은 쓸쓸한 죽음밖에 없었다.

파스빈더 감독은 멜로드라마 형식으로 자신만의 특유한 작품세계를 끌고 나간다. ‘사계절의 상인’ 또한 비극을 기반에 둔 가족멜로드라마 형식을 취하고 있다. 비극의 중심에 선 한스의 죄는 보잘 것 없는 직업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머니를 부끄럽게 했으며, 첫사랑 여인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누구나 총명할 순 없으며, 모두가 남들처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스는 펜을 굴리며 남 보기에 번듯한 일을 하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과일행상이 그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에게 수치심을 줬다. 한스가 가족들에게 원한 건 그 자신을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대였다. 그에게 사랑은 죽음보다 차가운 것이었다. 한스에게도, 그리고 감독인 파스빈더에게도 사랑은 중요한 삶의 이유이다.
그러나 감독은 사랑이 모든 비극을 구원해 주리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그는 멜로드라마 형식을 이용해 독일 사회의 모습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한 가정 그리고 그 가정을 둘러싼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개인(특히 비주류의 삶을 사는 개인)을 좌절시키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개인의 행복과 불행은 결국 그 사회의 구조, 그 사회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소외된 자들을 끊임없이 비극의 주인공으로 내몰고 있다. 파스빈더 감독의 영화에 감도는 씁쓸한 기운은 언제나 보는 이의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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