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신의주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한데 이어 초대 행정장관으로 외국인을 내정했다는 소식이다. 남측의 한 지역을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제3국인을 책임자로 들어 앉힌 상황을 가정해 보면 가히 충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두달전 쯤 6·29서해교전에 대해 전격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직후부터 북측이 보이고 있는 행보는 한마디로 예상 불허다. 중단됐던 장관급 회담을 재개해 남북관계를 6·15 공동선언 직후의 상황으로 복원시켰으며 거의 동시에 북한 내부에서 광복 이후 토지개혁에 맞먹는다는 경제관리 조치가 단행됐다. 이어 북·일 정상회담이 개최됐고 49년동안 단절됐던 경의선,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공사를 시작했다.
 
어제는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 군 사이에 핫 라인이 개통됐다. 앞으로 또 어떤 조치가 나올지 북측이 시도하고 있는 변화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북측의 변화를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흐름은 경제건설 의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해 초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 뒤부터 줄곧 강조하고 있는 신사고와 실리 우선주의가 경제건설의 기본방향이라면 현재 보이고 있는 변화는 그것이 구체화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신의주 특구 지정도 상하이 방문을 전후해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나온 것이지 갑작스럽게 돌출한 것이 아니다.

과거 북측은 그 나름대로 경제난 타개책을 강구해 왔으나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70년대 이후 경제가 기울기 시작해 80년대 중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합영법을 제정, 외자유치에 나섰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특히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구 소련이 해체된 데다 서방의 경제봉쇄까지 잇따르면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비참한 지경으로까지 내몰리게 됐다.
 
이제 북측은 중국 러시아와 예전 수준의 경제협력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돌파구를 뚫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고집불통의 `은둔의 왕국'이 마침내 개방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있는 반면, 좀더 지켜봐야 진짜 속셈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유보적인 입장도 있다.

북한이 반세기만에 옳은 방향을 잡은 만큼 외부에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적극 호응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그것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동북아 지역,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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