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는 도로나 철도를 중심으로 도시와 산업이 발달했다. 세계화·국제화로 대변되는 21세기는 공항을 중심으로 사람과 물류가 형성돼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공항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상징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맞춰 중국·일본·홍콩 등 동북아 주변 국가들은 천문학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력 있는 허브 공항을 육성하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인천공항 또한 동북아시아 허브 공항으로 육성되면서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대변되고 있다. 하지만 인천공항의 동북아 허브 공항에 대한 청사진이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불투명해졌다. 여야 대선후보 모두가 동남권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고 나오면서 다음 정부부터 추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시설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동남권신공항이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백지화된 지 2년도 되지 않아서 부활하게 된 셈이다. 동남권신공항 건설이 또다시 쟁점화되면서 그동안 쌓아 올린 동북아 허브 공항 건설에 대한 인천공항의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인천공항, 신화의 시작

   
 

2001년 3월 29일 오전 4시 46분. 방콕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3423편이 길게 뻗은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대한민국 항공산업 역사에서 거대한 변화가 시작된 인천국제공항의 첫 비행기가 들어온 것이다. 1958년 이후 대한민국 대표 국제공항으로 자리잡던 김포공항의 40여 년 역사가 막을 내리고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인천공항의 성공적인 개항은 건설기간 내내 나온 수많은 우려와 의혹을 일시에 불식시켰다. 세계에 대한민국의 저력을 알린 기적과도 같은 쾌거다.
이후 인천공항은 여객 연평균 6.3%, 화물 연평균 4.8%의 성장세를 유지하며 국제화물 세계 2위, 국제여객 세계 8위의 공항으로 성장했다. 특히 ‘공항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릴 만큼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사상 처음으로 7년 연속 세계 1위로 선정됐다. 이와 함께 세계 양대 여행전문지인 미 글로벌트래블러(7년 연속)와 비즈니스트래블 선정 세계최고공항, 스카이트랙스 선정 세계최고공항, 카파 등 세계적 권위의 상을 휩쓸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명실상부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서의 역할과 대한민국 대표 명품 브랜드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 나갔다.

  
# 각 국가별 허브 공항을 위한 시설 확장 가속화
동북아 지역에서 공항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향후 각국 공항들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명암이 뚜렷하게 갈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각 나라별 이에 대한 대응이 성공할 경우 메가 허브 공항으로 성장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지역 공항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재 동북아 지역에는 진정한 허브 공항이 아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허브 공항의 위치를 선점하는 공항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관측이다. 이런 점에서 인천공항 3단계 건설사업은 허브 공항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된다. 현재 중국·일본·싱가포르·홍콩 등 주변 국가들의 공격적인 공항 운영은 인천공항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인천공항이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성장하기 위해선 중국 공항들의 시설 투자 등 급속한 성장에 따른 위협 요인을 대처하는 방안 강구가 필요하다.

   
 

# 동북아허브공항 건설 논란 재점화
동남권신공항 문제가 제18대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인천지역에선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현재 동남권신공항에 대한 찬성론자는 세계화 시대에 남부권을 경쟁력 강화 지역 허브로 육성하는 전략으로 효과적인 지역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세계적 지역 허브로 발전시키는 데 허브 공항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18대 대선에 나선 여야 후보들도 동남권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서 신공항 건설은 대세가 됐다. 당시 두 후보 모두 미래의 항공수요를 대비해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찬성론을 내세웠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지난해 11월 30일 부산에서 “신공항은 부산시민이 염원하는 것”이라며 “국제적 최고 전문가들이 공정한 평가 결과 가덕도가 최적 입지라고 평가하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제18대 대선에서 박 후보가 당선되면서 신공항 건설 동력은 폭발적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박 당선인의 청와대 입성에 일등공신인 새누리당 소속 영남권 의원들이 신공항 건설에 나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박 당선인은 다른 지역보다 영남(부산·대구·울산·경북·경남)에서만 평균 70% 가까운 높은 지지를 받았다. 영남 유권자들의 염원인 신공항 건설에 적극 나설 것이란 이유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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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백지화된 동남권신공항 건설, 왜?
동남권신공항 운영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은 각 용역별로 차별을 보이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지난해 3월 백지화를 발표할 당시 경제성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B/C(비용대 편익:1.0 이하면 경제성 부족) 경남 밀양 0.73, 부산 가덕도 0.70으로 나왔다. 쉽게 말해서 투입한 비용에 비해 본전도 못 뽑는 장사라는 얘기다. 이에 반해 부산과 대구는 자체적으로 타당성 조사를 실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두 지자체 모두 2025년까지 동남권 국제선 수요가 1천만 명까지 늘어난다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동남권신공항을 찬성하는 지자체들은 이러한 경제적 타당성보다 더 큰 효과를 내다보고 있다. 부산 가덕도의 신공항 건설 비용은 국토해양부 기준 9조8천억 원, 경남 밀양은 10조3천억 원이다. 향후 신공항이 건설되는 지역엔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면서 지역경제를 이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해당 지지자체에서 신공항을 유치하려는 이유인 셈이다.

# 동남권신공항으로 인천공항 경영 부담 우려
동남권신공항이 건설되면 인천공항의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의 역할이 분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경제성이 없는 동남권신공항이 추진될 경우 혈세 낭비 및 항공수요 이탈에 따른 인천공항 경영 부담은 가중될 것이란 전망이다. 인천공항에 대한 경쟁력 약화는 지난해 인천공항~베이징(北京) 노선을 김포공항으로 이전하면서 실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인천과 중국 베이징을 연결하는 주 84회 노선 가운데 주 28회 노선이 김포공항으로 이전된 이후 베이징에서 인천을 찾는 승객이 급감한 것.
당시 노선은 김포공항으로 이전하기 전인 지난 2011년 1월부터 6월까지 68만9천여 명(환승객 포함)이 베이징에서 인천을 찾았다. 반면 노선 이전이 있었던 7월 이후 같은 해 12월까지 베이징에서 인천을 찾은 승객은 48만6천여 명으로 급감했다. 감소세는 2012년 들어 더욱 심해졌다. 지난해 1월부터 6월까지 베이징에서 인천으로 입국한 승객은 44만4천여 명 수준에 불과했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35.4%가 감소한 수치다.
이에 반해 인천공항 전체 이용객은 역대 최대 실적(14만301명 이상·8월 5일 기준)을 기록했다. 김포공항으로 이전한 베이징 노선에 따른 승객 감소에도 여객수송인원은 지속해서 증가했다. 인천공항이 허브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성적은 가능했다. 이를 비춰 볼 때 김포공항~베이징 노선이 아닌, 엄청난 예산으로 건설되는 동남권신공항은 결국 인천공항 경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 지방공항, 유령공항으로 전락

   
 

전국 각지에 건설된 공항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 각종 지역 개발 명목으로 유치한 지방공항들이 ‘유령공항’으로 전락해 있는 상태다. 김제공항의 경우 공사비 ⅓을 들여 부지를 매입하고 2003년까지 공사를 진행해 오다 지금은 산업단지로 전환했다. 수요 부족이 이유다. 예천비행장으로 이름이 바뀐 예천공항은 390억 원 예산을 들여 2002년 신청사를 완공했다. 하지만 2004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상황이다. 주변에 중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 등이 생기면서 공항이용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추진된 각 지역 공항 건설과 증설 사업비만 모두 3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짓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닌, 앞으로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 폭이 커진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동남권신공항이 개항하게 되면 이 정도까지는 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지방공항에 노출된 문제점을 비춰봤을 때 인천공항과 동남권신공항 2곳 중 하나는 경영상 어려움에 당면할 것으로 충분히 예견해 볼 수 있다.

# 인천지역 여야 국회의원, 동남권신공항 건설 반대 단 1명
동남권신공항이 건설되면 인천공항 이용객의 절반이 신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토연구원은 신공항이 건설되면 동남권에 거주하는 인천공항 이용객 550만 명 가운데 350만~360만 명이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를 이용할 것으로 추정했다. 신공항 건설은 인천공항 경쟁력 약화라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상황이 이런데도 인천지역 국회의원 중 박상은(새·인천 중·동·옹진)의원 단 1명을 제외하곤 누구도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본보가 최근 국회의사당 의원사무실에 ‘동남권신공항 건설에 찬성 또는 반대에 대한 입장’을 물은 결과 11명의 지역 국회의원들이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특히 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6명의 야당 의원 모두 대선을 의식해 입을 닫으면서 이제 와서 반대하기엔 궁색하게 된 상태다.

이광호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사무국장은 “동남권신공항은 인천공항이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도약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인천공항이 인천에 있으면서 가져오는 위상은 아주 큰 상황에서 지역주민이 뽑은 국회의원이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면 지역구 의원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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