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별별 직업이 많다.

대통령, 기자, 의사, 농부 어느 직업에 귀천이 있고 어느 직업이 낮과 밤을 가리겠느냐마는 먹고사는 주 시간대는 태양빛이 내리쬐는 낮이다. 낮이면 일을 하고 밤이면 잠을 자는 게 순리다.

하지만 우리가 눈을 붙인 시간에도 세상은 돌아간다. 신문은 밤새 윤전기로 찍어내 가정으로 배달되고 농산물은 식탁을 즐겁게 하기 위해 산지를 떠나며, 무심코 버린 쓰레기는 밤새 누군가가 깨끗이 청소한다.

모두가 잠든 새벽. 어스름을 깨고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벽을 열고 세상을 여는 사람들이다. <편집자 주>

○…모두가 잠들기 시작하는 0시 30분. 인천시 서구 심곡동에서 신문을 배달하는 유회석(45)씨에겐 일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계양구 효성동 사무실의 식구는 모두 24명. 삽지 담당 12명, 발송 담당 12명으로 커피 한 잔에 몸을 녹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멀리서 둔탁한 트럭 엔진소리가 들려온다. 신문 도착을 알리는 소리다.

2인 1개 조로 광고지를 신문 사이에 집어넣고 권역별로 신문을 나누다 보면 영하의 날씨에도 얼굴과 등줄기엔 땀이 서린다.

새벽 2시 유 씨는 신문 배달을 위해 심곡동으로 향한다.

경력 6개월의 신참인 유회석 씨는 최근 폭설로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제설 작업이 안 된 도로를 달려 신문을 배달하다 보면 발송 지연은 불가피하지만 이를 이해하는 독자들도 있는 반면, 심하게 항의하는 독자들도 있어 섭섭함을 느끼기도 한다.

유 씨의 새해 소망은 소박하다. 그는 “두 아이가 공부를 잘 하고 아내와 가족, 부모님이 모두 건강하길 바란다”며 “새해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경제를 살려 밥 먹고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회석 씨가 신문 배달을 시작하는 새벽 2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농수산물도매시장은 과일 경매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경매 들어갑니다. 허어~ 으아아어아 이으오아이에~”
나무 타는 냄새가 가득한 도매시장 입구에는 어스름 추위를 피하기 위해 피워 놓은 모닥불 주위로 과일 도매상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날의 시세전망을 주고받는다.

반면 경매가 시작된 시장 안쪽엔 도매상들의 눈치작전이 한창이고, 생소한 모양의 전동차는 촌각을 다투며 골목을 누빈다.

김장이 끝난 겨울, 비수기를 맞이한 이곳 도매시장은 하루 100t의 과일과 채소를 거래하지만 성수기인 봄과 여름에는 300t 이상이 거래되기도 한다.

인천농산물㈜의 최영재 이사는 구월농산물도매시장이 생긴 1994년 1월부터 경매사 생활을 해 온 베테랑이다.

그는 경매사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매쟁이’라고 표현한다. 소비자의 기호가 날로 까다로워지고 생산단가가 높아지면서 갈수록 중매 서기가 까다로워지지만, 좋은 물건을 제값에 소비자에게 팔아줄 때 석 잔의 술이 필요없을 정도로 큰 보람을 느낀다.

최 이사는 “20년 가까이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젠 이골이 나 어려울 것도 없다”며 “인천지역에 싱싱한 물건을 공급하기 위해 매일 1천여 명의 사람들이 새벽을 열고 있다”고 말했다.

○…구월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과일 경매가 끝나고 채소 경매가 시작되는 새벽 4시. 8년차 기관사 김호중(36)씨는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첫차 운행을 위해 인천시 계양구 귤현역에 위치한 인천교통공사 차량기지사업소로 향한다.

   
 

김 기관사가 졸린 눈을 비비며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출입문장치·제동장치·역행장치·견인장치·TIS(열차정보시스템) 등으로 정시·안전운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항목들이다.

5시 5분 관제소의 출발신호와 함께 김 기관사가 운행하는 인천지하철 1호선 첫차가 귤현역을 빠져나간다.

인천지하철은 최근 7호선 연장 및 수인선 개통, 공항철도 연결 등으로 하루 이용객이 20만 명에서 25만 명에 이른다. 김 기관사는 이른 아침 힘차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볼 때면 가슴속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때문에 김 기관사가 인천도시철도 29개 정거장 중 가장 좋아하는 곳은 많은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부평역이다.

그는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딸을 보면서 항상 힘을 얻고 있지만 남들 쉬는 날에도 일할 때가 많아 가족에게 미안하다”며 “새해엔 동료들 모두 사고 없길 바라고, 개인적으론 최고의 기관사인 ‘탑콘’에 선정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 기관사의 첫차가 귤현역을 빠져나가는 시간에 한상영(인천시 부평구·61)씨의 노란색 손수레도 함께 움직인다.

   
 

한 씨는 정년을 1년 남긴 환경미화원이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날씨와 쓰레기, 사람들의 편견과 씨름한다.

돌덩이처럼 얼어버린 눈이 걸음을 어렵게 만들고 한층 추워진 날씨 탓에 손발은 얼얼하다 못해 이젠 내 것 같지가 않다.

길모퉁이 외딴 전봇대 부근에 버려진 하얀 연탄재는 한때 뜨거웠던 한 씨 자신의 젊은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연민이 느껴진다.

환경미화원이 담당하는 구간은 3~4㎞. 그가 맡은 부평시장은 일이 어렵기로 손꼽히는 구간이다. 부평구는 2013년 환경미화원의 정원을 140명에서 135명으로 줄일 계획이어서 한 씨 퇴직 후 이곳을 누가 맡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그는 “부평구 인구는 점점 늘어나지만 도시환경을 담당하는 환경미화원 수는 오히려 줄어들어 걱정”이라며 “환경미화원이 줄어들면 그만큼 도시환경이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씨는 요즘 퇴임 이후의 거취 때문에 걱정이 하나 더 늘었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다.

그는 “요샌 60이 넘어도 집에서 마냥 놀 수만은 없다”며 “주위에서 대부분 경비원을 하던데 나도 그 일을 하면서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환하게 웃어보였다.

○…신새벽이 열리는 오전 5시. 인천시 서구의 한 인력사무소.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환경미화원 한상영 씨처럼 중년을 훌쩍 넘긴 60대가 대부분이다. 삶의 고단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건설 현장의 일거리를 찾아 이곳을 찾는 사람은 하루 80명 수준. 기술자는 하루 일당이 15만~20만 원 선이지만 잡부는 8만 원 수준에 그쳐 소개비 10%를 떼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7만 원이 고작이다.

학교를 자퇴하고 18살 때부터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해 왔다는 임호섭(26)씨는 10여 년 전 하루 일당은 5만 원이었다고 말한다.

임 씨는 “현장에서 잡부로 일하고 있는데 요샌 날이 추워 그나마 있던 일도 많이 줄어 걱정이다”라며 “10년 동안 물가는 가파르게 올랐지만 건설노동자의 일당 상승률은 이를 따르지 못해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한 그는 건설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좋지 않은 시선이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는 “잡부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외국은 건설노동자도 좋게 인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남들이 다 하기 싫어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호섭 씨는 에어컨 수리 기술을 배워 3월부터 9월까지는 에어컨 수리기사로 일하고 있다. 제법 수입이 좋지만 겨울엔 일이 없다는 단점 때문에 겨울에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보일러 관련 기술을 배울 계획이다.

그는 “여름과 겨울에 안정적인 일거리가 있다면 앞으로의 생활이 더 좋아질 것”이라며 “새해엔 아무 사고 없이 몸 건강히 지내고 일을 많이 해 부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천진한 웃음으로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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