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장발장’으로 더욱 친숙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불행한 사람들)’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재창조되고 있다. 여러 장르의 창작물 중에서 원작 소설만큼이나 대중의 오랜 사랑을 받아 온 것은 뮤지컬 버전으로, 이는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무대에 오르며 전세계인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이번 겨울에 개봉한 영화 ‘레미제라블’은 뮤지컬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1985년 런던 초연에서부터 꾸준히 작품을 지휘해 온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가 영화 제작에 참여해 장엄한 뮤지컬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장발장이라는 한 사람의 일생과 사회와의 관계를 통해 시대의 화두를 제기하는 작품을 만나본다.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19년간 강제노역을 살다 가석방된 비참한 사내 장발장. 전과기록이 있는 그는 출소 후 일자리는커녕 하룻밤의 잠자리조차 마련할 수 없었다. 모든 세상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고 생각했을 때 장발장은 미리엘 신부를 만난다. 신부는 그에게 따뜻한 음식과 잘 곳을 제공하지만 원망과 분노로 가득한 그는 신부의 은혜를 성당의 은식기를 훔치는 것으로 되갚는다. 이후 경찰에 잡혀 성당으로 끌려온 장발장에게 주교는 “그는 도둑이 아니며 은식기들은 내가 줬다”고 증언하며 은촛대까지 그의 손에 쥐어준다. 그 일을 계기로 장발장은 원망과 분노를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이후 자신의 옛 신분을 숨기고 사업가로 성공한 장발장은 사람들을 배려하는 인자한 성품으로 시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언제나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형사 자베르가 버티고 있었다. 자신을 향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장발장은 가난으로 인해 비참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가련한 여인 판틴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의 딸 코제트를 키우며 사랑과 헌신의 기쁨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된다. 하지만 질긴 악연의 고리는 쉽게 풀리지 않는 법. 자신을 쫓는 형사 자베르를 피해 장발장과 코제트는 항상 불안한 도망자로 살아야 했다. 이런 그들에게 자유와 평등 그리고 가난을 극복해 더 나은 내일을 꿈꾸게 하는 혁명의 움직임은 중요한 가치로 다가오게 된다.
‘레미제라블’은 유명한 소설이긴 하지만 이 작품을 완독한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축약되거나 각색된 장발장 스토리는 어린이 위인전 형태로 그의 개과천선과 성공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지만, 사실 원작은 장발장을 둘러싼 프랑스 사회와 풍습을 방대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 역시 3시간에 육박하는 긴 러닝타임 속에서 장발장의 인생사와 19세기 프랑스의 법과 권력 그리고 억울하고 불행한 소외계층과 가난한 민중의 삶도 함께 엮어내고 있다. 자칫 장광설에 가까워 보일 만큼 군데군데 지루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은 장발장과 자베르의 갈등의 형태다. 한때 잘못이 있었지만 신부님의 은혜에 감화돼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는 장발장과 그의 선행은 과거를 감추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다고 믿는 자베르의 시선. 절대적인 법 앞에 그 어떤 것도 이해와 용서를 구할 수 없었다. 그렇게 법의 절대성 앞에 딱딱하게 경직된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법으로 구제받을 수 없는 범법자들과 소외계층만을 더욱 양산할 뿐이었다. 빅토르 위고는 이 작품을 통해 경직된 사회에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용이라 말하고 있다. ‘레미제라블’은 살아 있기 때문에 고동치는 심장처럼, 경직된 사회를 향한 혁명의지는 약진하는 에너지임을 보여 주고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