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의 나의 상황들, 내 생활을 노래하듯 때로는 연애하듯 풀어낸 시편들입니다. 표면상으로는 말랑말랑해 보일지라도 실상은 치열하게 살았던 삶의 한순간들을 집약해 놓은 결과물들이죠.”
시인 배선옥(48)은 최근 펴낸 자신의 두 번째 시집 「오래 전의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다」를 이렇게 설명했다. 간간이 자신의 등단지인 월간 시문학을 통해 시편을 선보여 왔지만 책으로 묶어낸 것은 2004년의 「회 떠 주는 여자」 이후 8년여 만이다.
이번 시집에는 산문시 63편이 실렸다. “능력이 안 돼 다작은 어렵다”며 웃어 보인 그는 “첫 시집 이후 한 달에 한 편씩 꾸준히 완성해 온 시 중 같은 성향만 골라 묶었다”고 말했다. 또 “두 번의 시집 모두 지자체 기금을 받아 제작됐다”며 “출간 시기는 늦어졌지만 시집을 펴내면서의 경제적 부담도 덜고 선정·지원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첫 시집 「회 떠 주는 여자」가 건조한 분위기 속에 사회를 둘러보는 시선까지 담았다면 이번 시집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우선 산문시라는 형태가 그렇고, 그 내용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다.

길모퉁이 재활용품 하치장에 버려진 살림살이를 보며 다시 사랑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읊조린 ‘지금은 사랑할 때’, 일상에 치여 소홀해진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작가의 심리가 담긴 표제작 ‘오래 전의 전화번호를 기억해내다’ 등을 보고 있자면 “삶의 순간들을 집약해 놓았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특히 시집의 말미를 장식한 ‘찔레꽃’은 일상을 살아내며 시를 쓰는 작가의 내면을 짐작게 한다. ‘내 가슴에선 지금 시큼한 포도주 냄새가 난다 껍질과 알맹이와 씨들이 얽히고 섥혀 삭아가는 냄새(중략) 이제 형체도 없이 뭉그러져 잘 읽은 술처럼 말갛게 정제 된 시절 나는 또 그리워할 무엇이 남았길래 오랜 유행가 가사를 붙잡고 지나쳐간 한 때를 이렇게 흥얼거리는가(찔레꽃 중)’
마지막으로 시인은 “시집 한 권 분량을 묶어 놓은 만큼 곧 세 번째 시집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모두 산문시의 형태로 직설적인 표현이지만 그 의미를 숨겨 놓은, 독자들에게는 친절하지 않은 시들이다”라고 웃어 보였다.
1997년 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은 인천문인협회, 시문학문인회에서 활동 중으로 오는 2월 23일 배다리 아벨서점 시다락방에서 시 낭송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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