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작품에는 시대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해당 작품의 시공간은 현재와 차이가 나더라도 작품이 주는 감동은 오랜 여운을 남기며 묵직하게 다가온다. 오늘 소개할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1971년도 작품으로 우리에게는 영화음악인 ‘해는 뜨고 지고(Sunrise sunset)’라는 곡으로 익숙한 추억의 명화이다. 가난하고 힘든 하루하루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낙천적인 태도로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성실히 걸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연스레 지난 과거, 우리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겹쳐 보이는 작품이라 하겠다.

영화의 배경은 1905년 구소련. 우크라이나 지방의 유태인 거주지역에 테비에 가족이 살고 있었다. 가난한 살림이었지만 다섯 딸을 둔 가장 테비에는 호쾌한 사람이었다. 때때로 자신이 떵떵거리며 사는 부자가 아니라는 현실을 신에게 푸념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신에 대한 깊은 신앙심을 갖고 살아가는 소박한 아버지였다. 그가 사는 유태인 마을은 전통을 중시하는 곳으로 가족 간의 역할과 책임이 엄격히 분리돼 있었다. 그리고 결혼을 할 때에는 반드시 아버지의 결정을 따르는 것은 불문율에 가까웠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딸들의 반항이 시작됐다. 아버지가 결정한 사람 대신, 장녀는 소꿉친구였던 가난한 제단사와 결혼하겠다고 나선다. 전통을 중시하는 아버지에게 자유연애와 결혼을 승낙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딸의 사랑에 감동을 받아 허락하게 된다. 그 뒤를 이어 둘째 딸과 셋째 딸마저도 자신들의 사랑을 앞세워 기존의 전통과는 다른 방식의 결혼을 지지하고 나선다. 이런 중에 러시아 군인들이 유태인 거주지에 들어와 강제 퇴거 명령을 내리게 되고, 가족들은 뿔뿔이 헤어져 정든 고향을 뒤로하고 미국에서 재회할 것을 기약하게 된다. 이런 와중에 셋째 딸이 사랑하는 사람이 러시아 군인이라는 사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결국 셋째 딸의 사랑에도 축복을 기원해 준다.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세 딸의 결혼 소동과 함께 세대 간의 갈등과 유태인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다. 특히 세대 간 갈등은 전통적인 결혼과 새로운 결혼 방식에 대한 충돌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과정을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아버지 테비에가 중시하는 전통에 대한 상징이다. 뾰족한 지붕 위에 올라가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그 위에서 흔들리지 않고 아름다운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통이 잡아주는 균형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유태인의 전통은 부모가 정해주는 짝과 함께 백년해로하며 살아가는 것이지, 자신들의 취향대로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삶의 양식이 변하면서 전통은 도전을 받게 된다.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전통을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딸들이 전통을 거부하고 자신들이 찾은 사랑을 통해 결혼하는 모습을 보며 중매로 결혼한 테비에는 아내에게 25년 만에 처음으로 물어본다. “나를 사랑하오?” 이 말에 아내는 “아마 그런가 봐요”라고 수줍게 말하며 전통적인 결혼과 사랑에도 긍정을 표하고 있다. 테비에 가족은 전통에 대한 중요성을 긍정하지만 변화의 흐름을 가족 간의 사랑으로 수용해 가며 급진적인 혁명의 방식이 아닌 자연스럽게 과거의 전통이 새로운 전통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 주며 따뜻한 감동을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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