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특별행정구 지정으로 본격화된 북한의 자본주의 실험은 약 40년 전에도 시도됐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평양서 발간되는 `경제연구'를 비롯한 각종 간행물을 종합한 데 따르면, 북한에서는 60년대 중반 `이윤 본위의 리베르만 경영방식'의 도입을 적극 시도했고, 일부 산업현장에서는 실제로 시행되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60년대 중반의 이같은 자본주의 실험은 김일성 주석파와 반대편에 서있던 이른바 `갑산파'가 주도했으나, 곧 김일성와의 권력투쟁에서 패해 결과적으로는 무위로 돌아갔다.
 
박금철, 이효순 등이 중심역할을 한 `갑산파'는 당시 자본주위 경영방식의 도입을 명분으로 “경제사업분야에서 중앙집권적 경제방식은 비능률적”이라는 점을 내세웠었다고 평양의 잡지들은 밝혔다.
 
북한 정치사에서 60년대 중반은 김일성파와 갑산파 중심의 반 김일성파 간의 권력다툼이 한창 치열하던 때였다. 잡지들은 이 무렵을 “우리나라 사회정치생활의 여러분야에서 현대 수정주의가 밀수입되어 이러 저러한 불미스러운 사태를 낳은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한편 이 권력투쟁 과정에서 정치적으로는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찌산투쟁'을 부정하는 움직임도 나타나 `항일빨찌산 참가자들의 회상기' 집필이 중단됐고, 사회 및 문화계에서는 북한정권 수립 이후 금지돼온 `배뱅이', `배꽃타령' 등이 공연되기도 했다.

`갑산파'는 현재 “당안에 잠입했던 불순분자들”로 규정돼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