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에 따라서 같은 상황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곤 한다.

이를테면 큰 사고가 난 상황에서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사고가 난 현실을 되돌릴 수 없다면 그 상황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게 좋을까, 불행이라 생각하는 게 맞을까?

사고를 당한 건 분명 불행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그만하길 다행이라며 자신을 위로하며 안정을 찾길 바란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버텨내며 살아간다.

오늘 소개할 영화 ‘모래의 여자’는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비극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냈다.

남자는 학교 선생님이다. 도쿄에 사는 그는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있지만 달리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가끔이나마 한적한 교외를 여행하는 일이 일탈의 전부였다.

그가 실종된 첫날도 그런 종류의 어느 여행길에서였다. 희귀 곤충 채집을 위해 그는 일본의 외딴 시골마을로 여행을 나왔다 돌아가는 길이었다. 막차가 끊어져 하는 수 없이 민박을 하게 된 그가 묵은 집은 기괴했다. 움푹 팬 모래구덩이 속에 집을 짓고 여성이 혼자 살고 있었다. 집 안에도 모래가 가득했다.

식사를 할 때에도 우산을 쓰고 먹어야 될 만큼 모래는 온 집안과 공기마저 채우고 있었다.

다음 날, 그는 악몽과 마주하게 된다. 어젯밤 타고 내려온 줄사다리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여자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다른 말은 없었다.

남자는 탈출을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모래를 뚫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퍼낼수록 더욱 쌓여 갔고, 모래언덕을 타고 올라갈수록 더욱 아래로 빠져들어 갔다.

절망에 빠진 남자와는 달리 여자는 담담했다. 그녀는 밤마다 집 주변으로 밀려들어 오는 모래를 퍼 나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모래를 매일 퍼내지 않으면 집이 매몰되고, 그녀의 집이 매몰되면 이웃에 피해를 주기 때문에 그녀는 사명감을 갖고 매일 밤 노동을 했다.

그리고 그 노동의 대가로 마을 자치회는 일정량의 물과 식량을 배급했다. 여자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난센스에 가까운 이 상황에 남자는 묻는다. “살기 위해서 모래를 파는 거요, 아니면 모래를 파내기 위해 사는 거요?” 대답 없는 여자를 향해 그는 자신의 희망에 대해 떠들어댄다.

세상은 자신의 실종을 눈치챌 것이며 그때 가서 여자는 죗값을 치를 거라 엄포를 놓는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세상은 그의 실종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세상에서 금세 잊혀졌다. 그러나 그 사실을 남자는 알 리 없었다.

하루, 이틀, 일주일, 석 달, 열두 달이 지났다. 그도 어느덧 모래웅덩이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됐고, 뜻밖에도 모래 속에서 물을 구하는 기술도 터득하게 됐다.

시간이 흘러 모래집 주변에 줄사다리가 설치되지만 남자는 그 줄을 잡지 않는다. 이제 그에게 탈출은 더 이상 시급한 일이 아니었다.

연신 입속으로 들어오는 모래를 뱉어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처럼 영화는 관객들에게도 불편하고 꺼끌거리는 감각을 전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마치 세상에 없는 기괴한 이야기를 보는 듯하지만, 모든 것을 집어삼킨 운명 혹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바로 모래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영화는 생생한 현실이 돼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아직 풀어야 할 의문은 남아 있다. 절망의 모래웅덩이 속에서 남자는 작은 희망의 물웅덩이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기쁨과 유익함은 모래 속에서 살아가던 이전의 생활과는 분명 달랐다. 좀 더 나아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키워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역으로 그를 절망 안에 안주하게 만들기도 했다. 절망의 공간에 희망을 꽃피워 적응하게 되면서 그의 탈출의지는 약화된다.

이렇듯 영화 ‘모래의 여자’는 인간의 실존적 고뇌에 대한 우화라 할 수 있겠다.

끊임없는 탈출과 도전의지로 비극을 맛보는 것과 체념과 순응 그리고 적응을 통해 편안함을 느끼는 것.

어쩌면 인간은 그 두 개의 굴레 사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실존적 한계를 안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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