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을 지향하는 마음과 변화를 꾀하려는 욕망은 서로 상이한 감정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다닌다.

조응할 수 없는 두 가지 이상의 마음은 좀 더 강한 욕망이 다른 하나를 억제하며 공존한다. 하루하루 평범해 보이는 우리의 일상은 사실 상반된 두 심리의 치열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평온하게 느껴졌던 오늘이 권태로 다가올 때, 우리 안에 숨죽여 있던 모험심은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된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정사’는 일상의 권태에 짓눌려 도덕적 무감각과 소통이 불가능한 현대인의 모습을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심리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1960년도 작품으로, 인간의 실존적 고뇌에 대한 탐구를 불안을 껴안은 모험의 정서로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세 사람이다. 부잣집 외동딸 안나와 그녀의 친구 클라우디아 그리고 안나의 약혼자 산드로. 셋은 요트를 타고 한가롭게 여행을 떠난다. 요트여행에는 이들과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두 커플도 동행한다.

여행 둘째 날, 바위섬에 잠시 정박해 휴가를 즐기던 중 안나가 사라진다. 수색대까지 나서 그녀를 찾아보지만 섬 어디에서도 안나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클라우디아는 안나의 약혼자인 산드로와 함께 포기하지 않고 그녀의 행방을 찾아 백방으로 나선다. 그리고 안나의 행방불명이 채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여행의 3일째 되는 날, 산드로와 클라우디아 사이에 묘한 감정이 싹트게 된다.

안나의 행방을 찾아 나선 이들의 동행은 그 원래 목적이 상실된 채 두 사람만의 밀월여행이 돼 버린다. 안나의 실종을 걱정하던 다른 커플들도 더 이상 그녀의 행방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안나의 행방이 궁금한 사람은 어쩌면 관객들뿐이다.

이제 이 영화는 산드로와 클라우디아의 심리만을 따라갈 뿐, 안나의 이야기는 영화 자체에서 사라지며 그녀의 존재성은 그대로 실종돼 버린다. 반면 안나의 존재를 빠르게 잊어가며 서로에게 친숙해진 두 사람에게 함께 있는 순간이 어느덧 무감각한 일상이 돼 버린다.

그리고 산드로는 또 다른 여인의 품에 안겨 하룻밤을 보낸다. 이를 목격한 클라우디아는 충격과 배신감에 오열하고 뒤이어 그녀를 따라온 산드로도 그 곁에서 함께 오열한다. 그녀보다 더욱 뜨겁게 흘리는 산드로의 눈물은 속죄의 눈물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존재의 황폐함에 흘리는 서러운 눈물이었다.

이 영화의 원제는 모험(L’Avventura)으로 국내에는 ‘정사(情事)’라는 뜬금없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원초적인 호기심으로 영화를 접했다면 두 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을 감내하는 것은 고문에 가까울 만큼 이 작품에서 화끈한 볼거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비록 성(性)적 해이가 영화 전반에 걸쳐 퍼져 있기는 해도 그 모습을 담아내는 영상은 육체에 대한 탐닉보다는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묘사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관객들과 정서적 교감이 잘 이뤄질 때보다 큰 호소력을 갖는다.

그런 면에서 요즘 같은 불황의 시대에 돈 많은 부르주아 계급의 권태로운 일상이 부른 위험한 모험이란 이야기는 오늘의 정서와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풍요로움이 낳은 권태와 무감각이든, 좌절의 반복을 통해 얻은 무기력이든 양극의 두 상황 모두 불안과 공허함 그리고 존재의 황폐함을 불러온다.

이 작품이 말하는 모험은 권태가 낳은 공허함으로 스스로의 삶에서 배반당하는 인생을 모험에 비유하기도 했지만, 자극에 무감각한 일상을 털어내고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희망, 즉 도전과 모험을 인생의 원명으로 삼으라는 의미도 중의적으로 내포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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