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신화」(박재현 지음)는 선불교에 씌워진 오해와 해석을 벗겨 원형 찾기를 시도한 책이다. 저자가 선불교를 '가섭(迦葉)살리기와 아난(阿難) 죽이기'로 접근한 것은 매우 신선한 관점이다.

가섭과 아난은 석가모니 부처의 두 제자. 가섭은 운이 좋았던 사람으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복함의 정도는 세간의 짐작을 넘었고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지 3년 쯤 되던 해에 출가, 수행한 지 여드레 만에 깨달음을 얻었다.

붓다 사후 교단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었고 첫번째 경전결집을 주도했다. 그가 무엇보다 운이 좋았던 이유는 역사가 그를 부처의 수제자로 공인한 데 있다.

반면 아난은 잘 생겨서 불운했던 인물. 붓다와 너무 가까운 사이여서 불행의 정도는 더했다. 용모 탓에 수많은 여인들의 유혹에 시달려야 했다. 붓다 생전에는 깨달음을 얻지 못하다가 붓다 사후 아라한과를 얻었다. 뛰어난 기억력으로 가섭이 주도하는 경전결집에 참여했다.

모든 경전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의 '나'가 바로 아난이다. 하지만 아난은 붓다의 입적을 방치했다는 등 여러 추문을 뒤집어쓰고 선불교의 '가시'로 전락한다.

"선(禪)과 교(敎)의 근원은 부처님이고 그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다"(휴정. 1520-1604)

저자는 두 제자를 비교하면서 선가(禪家)의 문자 혹은 교학에 대한 경시풍조가 가섭의 옹호, 아난의 비난으로 발전했다는 가설을 제기한다. 엄청난 양의 논소(論疏)로 이뤄진 불교학의 뿌리는 아난의 암송을 통해 구현된 경(經)이다.

그러나 선가에서 볼 때 제아무리 경이라 해도 역시 글쓰기의 산물에 불과하고 말과 글은 침묵과 몸짓에 비해 열등한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부처의 임종을 지키고 유언을 직접 들은 아난보다도 가섭이 더 추앙받는 존재로 부각된 본원적 이유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가섭이라는 인물 속에 애써 담고 싶었던 선불교의 의지가 바로 지금껏 선불교를 이끌어온 저력이었다고 지적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사장이 되고 싶으면 사장이 되려는 생각을 버리고 돈을 벌고싶으면 돈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전해지는 선문답의 함의를 파고들어가 '의지의 미망' 개념에 다가서려 한다.

또 불교계의 쟁점이었던 돈점(頓漸) 논쟁이 번쇄한 철학이론이 아니라 모종의 의지 혹은 욕망의 반영일 수 있다는 차원에서 접근한다.

선불교의 노동관, 여성관, 방편론 등을 거론하며 선불교가 언제까지 사회와 역사를 도외시할 것인가 묻는다. 푸른역사 刊. 356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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