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한 (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머지않아 최장집 전 교수와 안철수 의원은 서로 결별할 것이다.

바로 얼마 전에 최장집 전 교수가 안철수 의원의 연구소 이사장으로 영입되고 서로 굳게 악수를 나눴지만 말이다.

최장집 전 교수는 이날 기자들 앞에서 “안 의원만큼 저한테 집요하게 그리고 진정성을 가지고, 정치와 민주주의를 배우고자 하는 열성과 열정으로 저를 대했던 사람은 없었고, 그래서 안 의원의 열정에 감동한 것이 이사장직을 맡게 된 가장 중요한 계기”라고 밝혔다.

하긴 정년퇴직한 노 교수를 찾아주는 정치인이 많지는 않을 것이고 모호한 새 정치만 부르짖는 정치 초년병에게 쉽게 울타리가 되어 줄 교수도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두 사람의 조합은 이상하지만서도 그럭저럭 이해가 되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새 정치라는 말로 시작해 새 정치라는 말로 끝나는 사람이다.

과거 구태정치가 좌와 우,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대결하는 정치라고 규정하고 이를 타파하는 새로운 길,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다.

과거 강연이나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자신이 안보는 보수이고 경제는 진보인데 좌와 우, 진보와 보수 어디에 속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안철수 의원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구분과 대결은 버려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 왔다.

그래서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모두 가까운 듯 처신하면서도 민주당을 마다하고 새누리당도 멀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최장집 전 교수가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고 노동에 기초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취지의 강연을 했다.

이러한 발언에 대해 안철수 의원 측이 처음에는 당황했다가 나중에는 동감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소식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신 안철수 의원이 입에 달고 사는 또 다른 말인 국민이 보기에 무엇이 안철수의 새 정치이고 무엇이 안철수 신당의 방향이라고 생각할지가 중요하다.

안철수 신당 또는 안철수 의원의 좌표가 계속해 진보 대 보수의 구도에 있는 것이고 더 나아가 노동에 뿌리를 내리겠다는 것인가?

그것이 안철수 의원이 정치에 투신하고 부르짖었던 새 정치인가?

아니면 안철수 의원이 최장집 전 교수의 한마디 교육과 교시에 의해 새 정치의 내용과 정의를 바꾸었나?

또한 최장집 전 교수가 안철수 신당의 방향을 제시하는 강연에서 대통령제에서 반드시 결선투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지론을 다시 한 번 폈다.

과거 최장집 전 교수가 민주노동당 계열의 정당에게 현실적인 당선 가능성이 없다는 정치적인 제약을 헤쳐가는 방향에서 이 결선투표제를 제시해 왔다.

당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의 승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라도 돼 중요한 장관 자리 몇 개라도 확보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었다.

민주당이 요새 결선투표제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인위적인 후보 단일화 없이 대선에서 승리까지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안철수 의원도 한국정치의 안정과 발전 대신 이러저러한 정치적인 입장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데 앞장선다면 자신의 새 정치의 정체도 뻔해지는 것이다.

최근까지도 대통령제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뒤 다당제가 확산되어 정치적인 불안정성을 확대재생산함으로써 중남미 국가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조합이 이미 오래전 미국의 정치학계에서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공론화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관심도 못 받는 것 같아 아쉽다.

한국의 대통령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은 국민적 토론은 물론 국회의 심의도 필요하지만 결국 개헌의 대상이 된다. 쉽지 않다는 얘기다.

진보정당들이나 안철수 의원의 신당이 자신의 당선 가능성이나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시키려는 차원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기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자신의 혁신노력과 정치적 실력을 보여줘 정정당당하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 첩경이다.

최장집 전 교수에게 그렇게 집요하고 진정하게 배우고자 했던 안철수 의원 사이에서 안철수의 새 정치 개념과 최장집 전 교수가 충돌하게 되면 최장집 전 교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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