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 시절 내가 쓴 시가 학생문예지에 당선돼 5만 원의 상금을 받았어요. 당시 형편 탓에 단벌 아가씨였는데 예쁜 구두가 너무 갖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구두를 샀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줄 몰랐어요. 그 돈 가지고 아버지께 선물을 사 드렸으면 이렇게 후회는 안 됐을 텐데… 요즘도 가끔 떠올라서 내 철없음에 헛웃음도 나고 늘 내게 따뜻했던 아버지 생각에 애잔해져요.”

   
 
올해 일흔이 된 여류화백은 ‘국민화가’로 불리는 아버지와의 옛 추억을 전하며 싱긋이 웃어 보였다. 고(故) 박수근(1914~1965)화백의 맏딸 박인숙 씨다.

6년 전 인천여중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그녀는 이후 매년 7~8차례의 개인전·초대전·교류전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가 최근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그림 에세이’ 작업을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아버지와의 추억을 세상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다.

박 화백은 “어려운 집안 형편에서도 작품 한두 점을 내다 팔며 내가 해 달라는 건 다해 주시던 아버지였다”며 “그런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고, 내 아들까지 3대가 뒤를 잇고 있으니 나는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화가로 그 뒤를 잇는 그녀 삶의 교과서였고, 또 벗어날 수 없는 위대한 그늘이기도 했다. ‘박수근 화백의 딸’이라는 수식어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하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를 쫓는다.

이에 대해 박 화백은 “살면서 한 번도 ‘박수근 화백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며 “아버지가 주신 무언의 교육과 삶의 선함은 내가 이 세상을 버텨내는 지팡이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버지의 모습을 제게서 찾으려는 분들이 많은 만큼 늘상 행동가짐을 조심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화백의 설명을 빌리자면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한 ‘그림 에세이’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서정과 애틋함이 담긴 작품들이 실릴 예정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깊어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은 그를 천진한 예닐곱 살 여자아이로 돌려놓는다.

박 화백은 “나만의 애틋함으로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그림들을 그려 가고 있다”며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 이제 막 자신의 작품을 알리고 있는 아들 천은규와 함께 3대의 작품이 걸리는 전시회를 갖고 또 책으로도 출간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에도 일본 오사카 호텔 아트페어와 키아프(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이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조만간 삶의 터전이었던 인천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아버지의 생가가 자리한 양구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박 화백은 “앞으로의 삶을 아버지의 고향에서 준비하고 싶다”며 “양구 예술인촌 내에 작은 화실과 미술관을 겸할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아버지를 추억하는 많은 분들과 행복한 노년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웃어 보였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