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혜욱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근혜정부에 들어서서 대통령은 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불량식품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추진본부와 성폭력 특별수사대를 발족시켜 민생안정을 도모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들을 범죄의 불안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정책이라 하겠다. 다만, 4대악에 포함되어 있는 각각의 유형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폭력이라는 명칭으로 성폭력·학교폭력·가정폭력을 동일한 선상에서 다루는 정책은 문제가 있다. 세 유형의 폭력이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는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성폭력이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현상이 언론을 통해 알려짐으로써 사회적 공분과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성폭력범죄 연도별 발생현황을 살펴보아도 2008년 1만5천970건이었는데 2012년에는 2만2천935건이 발생해 평균 10.9%의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성폭력범죄가 발생, 수사기관에 신고된 건수를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신고되지 않은 성폭력 범죄까지 고려하면 실제로는 발생건수가 훨씬 많을 것이다.

 성폭력 범죄의 대책으로는 그동안 입법을 통해 신상공개제도·위치추적전자장치부착제도·성충동약물치료제도·취업제한제도 등 다양한 제도가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이는 성폭력 범죄로 인한 피해의 심각성이 크며, 이러한 성폭력 범죄의 근절에 일반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폭력의 경우에는 그 특성을 고려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조에 “이 법은 학교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피해학생의 보호, 가해학생의 선도·교육 및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간의 분쟁조정을 통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모두의 인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점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학교폭력의 경우에는 성폭력과는 달리 가해학생과 피해학생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가해학생의 경우에도 개선과 변화의 가능성이 매우 큼에도 형사사건이나 소년법에 규정된 보호사건으로 처리됨으로 인해 사회적 낙인효과가 발생, 건전한 사회구성으로 육성되기 어렵게 되는 측면이 있다.

이에 학교폭력 가해학생에 대해서는 가정과 학교 그리고 지역공동체의 협력 하에 자신이 주체가 되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성폭력과 동일한 선상에서 사회의 4대악으로 규정해 사법기관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실제로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학교폭력의 검거인원이 2008년부터 2010년간 2만5천 명 수준을 유지하다가 2011년 2만1천957명으로 감소했으나 2012년 적극적으로 대응한 결과 2만3천877명으로 8.7% 증가했다.

학교폭력은 적극적인 사법절차에 의한 대응보다는 그 예방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며, 실제 경찰청에서도 예방의 중요성을 인식, 교육대상을 유치원까지 확대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학교폭력을 예방해 학생들이 학교에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인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성폭력과 같은 강력범죄와 동일한 선상에서 ‘4대악’으로 규정해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종래와는 달리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해 ‘가정폭력도 하나의 범죄’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가정폭력처벌을 위한 특례법의 제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현행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제1조에 이 법의 목적으로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범죄와는 달리 건강한 가정의 구성을 위해 가정폭력의 경우에는 특례법을 통해 가해자에게 회복할 수 있는 한 번의 기회를 더 주는 것이다.

 피해로 인한 후유증이 심각한 성폭력 범죄와는 달리 가정폭력의 경우에는 폭력의 유형에 따라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사안과 특례법상의 보호처분에 의해 가정의 회복이 가능한 사안으로 구별될 수 있는 것이다.

일률적으로 근절되어야 할 ‘4대악’의 유형으로 모든 가정폭력을 처리하는 것은 특례법의 입법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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