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 소설을 읽어 보지 않은 독자라 하더라도 한 번쯤 제목은 들어본 적이 있을 만큼 유명하다.

이 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던 시절, 제목이 주는 느낌으로 인해 위인전처럼 전개되는 한 인물의 훌륭한 업적을 기리는 이야기일 거라 추측만 하며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덮어버렸다.

그리고 몇 해의 시간이 흘러 이 소설을 쥐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받아야 했던 당혹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당혹감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읽었을 때까지도 가라앉지 않았다.

 그 당혹감의 원인은 개츠비의 위대함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소설이라는 다수가 내린 긍정적인 평가에 나는 쉽게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동명 소설 원작의 영화가 지난 5월 개봉했을 때 누구보다 빨리 극장을 찾아 영화를 봤다. 기필코 찾아내고 싶었다. 왜 개츠비가 위대한지 그 답을 찾고 싶었다.

1920년대 뉴욕, 경기 호황과 치솟는 주가로 소비가 미덕이던 시기. 뒤이어 닥칠 대공황에 대한 공포는 전혀 직감하지 못한 채, 불법이든 합법이든 떼돈을 번 신흥 부자들이 흥청망청 즐기는 향락문화는 정점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향락의 중심에는 멋쟁이 신사 개츠비가 있었다.

그럴듯하게 자신을 포장한 고급 포장지와는 달리 그의 실체는 주류밀매업으로 거액을 벌어들인 불법적인 졸부일 뿐이었다. 그에게 유일한 진심은 한 여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뿐.

가난한 자신과는 출신성분이 달랐던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 데이지. 그는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축적한다. 데이지만을 바라보며 노력한 결과, 그는 어느 상류 집안도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막대한 부와 권력을 쟁취한다.

그러나 데이지는 게츠비와 달랐다. 그녀에게 사랑은 크게 중요한 개념이 아니었다. 한평생 우아하고 멋지게 사는 것, 그것만이 데이지가 생각하는 최상의 가치였다. 분명 아름답긴 했지만 뼛속까지 속물인 그녀에게 개츠비는 한때 지나가는 열병 같은 감정일 뿐 극복할 수 없는 대상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향한 개츠비의 사랑에 손을 놓아 버릴 수 있었다. 이미 유부녀인 그녀가 개츠비와의 불륜을 끝내고 남편에게 다시 돌아간 것은 남편을 사랑해서 혹은 그녀에게 남아 있는 양심 때문이 아니었다.

 대대로 명문가 집안인 남편에 비해 보잘 것 없는 배경을 가진 개츠비는 그녀에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어 자신의 실수를 기꺼이 덮어 준 개츠비가 그로 인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그녀는 개츠비에게 위로나 사과를 건네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불똥이 튈까 서둘러 그와의 연결고리를 끊어낼 뿐이었다.

그렇게 화려했던 개츠비를 숭배하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 모두 발길을 돌린다. 모두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한 그의 장례식장엔 개츠비의 가난한 생부와 이웃에 살던 닉만이 쓸쓸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를 스쳐간 인연의 뒤안길엔 부패와 속물근성만이 넘쳐났고, 불나비처럼 데이지를 향해 불태웠던 사랑의 정열 뒤엔 그 사랑을 부인하고 외면하는 무정한 한 여인의 빈자리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쩌면 ‘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함이란 위대하지 않음에 대한 반어일 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나마도 데이지를 비롯한 더없이 속물 그 자체로만 살아갔던 당시의 사람들에 비해서는 위대하다-조금 낫다- 정도일 뿐, 그의 일생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잡을 수 없는 모래알갱이처럼 허망하게 살다가 스러져 갈 뿐이었다.

 그러나 누구의 인생인들 모두 끝난 후에 허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살아있는 동안에 자신의 지향점을 향해 전력투구하고 이후 그 모든 결과에 대해서도 자신이 책임지고 감내하고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개츠비는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받을 만한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사랑을 위해 인생을 건 남자,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해 어떤 치욕도 감내하며 그것이 치욕인지도 깨닫지 못한 채 사랑만 추구하고 바라본 남자. 그 사랑의 최후는 비극적이었을지라도 그가 보여 준 사랑의 진심은 진실했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위대하다고 불릴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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