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성 변호사(인천경실련 공동대표. 기호일보 독자위원장)

중용 제6장 「舜其大知章(순기대지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순임금은 어떤 상황이든지 그 양극단을 모두 고려해 그 가운데를 백성에게 적용했다’라는 의미이다.

중국의 순임금은 본래 혈통적으로 천자가 아니라 천민 출신이었다고 한다. 비록 출신은 천민이었으나 28년의 정치기간 동안 탁월한 효행을 보여 주고 덕성과 지성을 겸비한 리더십이 인정받아 마침내 천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도올 김용옥의 중용/인간의 맛에서 인용함).

경상남도의 진주의료원 사태가 공공보건 전달체계의 문제점과 의료원의 관리 운영실태, 빈곤계층의 공공 보건의료 서비스 이용 실태 등의 다양한 문제로 전개되어 가고 있다.

취임한 지 겨우 2개월 정도에 불과한 도지사는 진주의료원이 노조 구성원들의 고비용·저효율 운영으로 이미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상실했고 누적 적자가 거의 300억 원에 달하는 등으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으므로 의료원을 폐업하고 매각, 그 돈으로 경상남도의 8만여 명의 빈곤계층에 대해 본인 의료 부담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식으로 공공 보건의료 전달체계를 전환하거나 변경하겠다는 자신의 계획을 공개하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주의료원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지사와 노조의 대립, 공공 보건의료 서비스 전달 문제 등으로만 분석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접근해 보면 이번 진주의료원 사태는 한 지도자의 독선적인 행동과 그 지도자의 행동을 검증하고 비판해 공익을 지켜야 의무가 있는 도의회의 책임의 망각, 그로 인한 민주주의 후퇴와 지방자치의 부작용이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터진 정치문화적 사건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시민의 대표기관인 도지사와 도의회는 주민의 복리증진을 책임지는 공익적 기관들이다. 따라서 수 년간 적자가 누적되고 민간 병원과의 경쟁력이 떨어진 진주의료원의 정상화 문제는 분명히 중요한 공익의 문제이다.

그러나 지도자의 목적이 아무리 명분이 있는 것이라고 해도 지방자치와 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지도자마저도 절차적으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원칙이 대화와 상호 이해 및 상호 존중이다.

도지사는 진주의료원의 적자가 너무 심하다고 주장하지만 국가의 각급 공공기관의 적자 상황을 조사해 보면 진주의료원의 누적 적자 280억 원 정도는 문제가 될 수도 없는 작은 수준임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의료원을 매각해 받은 돈으로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시설개선 사업비로 사용한다는 것도 보건소와 보건지소의 상급 전달기관으로서 의료원의 경쟁력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에 비추어 보면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더불어 노조원들이 빈곤층보다 더 많은 진료비 감액을 받아 오고 있다든가, 노조원이 정년퇴직하면 퇴직자 가족을 우선적으로 채용해 객관적이고 공평한 일반시민의 채용기회를 제한해 오고 있다든가 하는 도의 비난이 사실이라면 노조원들도 전문가와 시민사회의 자문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난 6월 11일 도의회는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안을 야당의원들의 강력한 저항 속에 통과시켰다. TV에는 어느 마이크를 잡은 여당 의원이 ‘모두 이의없으시죠?’라고 소리치면서 조례안을 통과하려고 시도하는 장면이 전국에 중계방송되었다.

그 여당 의원은 자신의 바로 근처에서 야당 의원들이 진주의료원 해산 조례안에 대해 반대한다고 소리치고 몸을 던지고 있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 보면서도 이의가 없으므로 통과시킨다는 코미디 같은 장면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해당 의원은 도지사와 같은 정당 소속의 의원이었을 것이다.

도지사와 같은 정당 소속의원이므로 진주의료원에 대한 전문가·환자·노조원·시민사회의 자문이나 권유는 안중에도 없이 도지사의 의도에 따라 옆에서 이의하는 반대 의원이 있음에도 더 이상 이의가 없다면서 조례안을 통과시킨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과거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하는 의희가 집행부와 같은 정당 소속이라는 이유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어느 지방정부들은 재정적으로 파탄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아왔다.

이번에 해산된 진주의료원에는 장애인 전문 산부인과, 장애인 전문 치과와 같이 사회적 약자에게 정말로 필요한 분야도 포함되어 있다.

의료원이 없어지면 장애인들에게 얼마의 금전적 보조가 이루어질 지 모르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치료기구를 도지사의 결심만으로 절차적 협의도 없이 해산하고 도지사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시민적 책임이 있는 도의원들은 도지사를 위해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진주의료원 사태.

지금 경상남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골스럽고 개탄스러운,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반문명적인 사건이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민주적 과정을 사정없이 팽개치고 있는 이 비민주적 사건을 목격하면서 우리가 싸워 쟁취한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는 언제쯤 정상화 될 것인지 참으로 걱정이다.

저 먼 시절에 국민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그 의견 가운데 가장 국민을 위한 의견을 정치에 적용했다는 순임금의 지혜와 덕이 부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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