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병국 사회2부

우리는 가끔 목적적 의미 전달이 호도되는 어휘 선택 때문에 큰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더욱이 정치인들 사이에는 말꼬리가 잡히면 인정은 물론 사정도 없다.

엊그제 우리는 민족 분단의 치욕을 안겨 준 ‘6·25전쟁’ 63주년을 맞아 파주와 연천, 강원도 철원 등 접경지역 도시들을 중심으로 전몰군경 등 순국선열과 해외 참전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그런데 파주에서 열린 기념식은 그다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때아닌 이데올로기 시대적 가치관이 동원된 말꼬리 잡기가 펼쳐진 탓에 그랬다.

문제의 발단은 파주시가 이날 행사장에 내건 ‘6·25 전승기념행사’란 제목의 현수막 때문이었다.

행사장에서 지역 출신 새누리당 황진하 국회의원은 이를 보고 이인재 시장에게 “6·25전쟁 발발일이 어찌 전승기념일이 될 수 있나?”라며 “이런 표현은 6·25전쟁을 두고 북한이 사용하는 표기법으로 그네들은 6·25를 정의의 전쟁이라고 호도하며 1996년부터 ‘전쟁승리의 날’ 소위, ‘전승절’로 제정해 매년 경축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다”고 강하게 지적하며 즉시 철거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전승(戰勝)이란 표현은 우리 군에서도 자체 행사 때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로 국가보훈처가 그 사용에 대해 큰 무리가 없다는 유권해석을 준 바 있어 문제가 없다”며 황 의원의 현수막 철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그대로 행사를 진행했다.

결국 황 의원은 행사장에서 전격 퇴장한 뒤 이날 오후 5시께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고 해묵은 이데올로기적 색깔론을 들어 으름장을 놓았다.

이처럼 시장과 국회의원이 보여 준 일단의 말꼬리 잡기 식의 대립각(?)은 자칫 시민들 사이에 이념적 양극화를 초래하는 파고까지 불러오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한다.

살펴보면 국방부가 지난 21일 개최한 ‘춘천지구전투 전승행사’를 비롯, 26일 해군이 연 ‘6·25전쟁 63주년 대한해협 해전 전승행사’ 등 6·25전쟁 관련 공식 행사가 이 표기를 준용한 것은 시가 선택한 목적적 어휘가 절대 무리수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한다.

더욱이 6·25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세계전략사에까지 수록된 ‘파주 설마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순국선열과 해외 참전용사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상징적으로 사용한 어휘 선택이기 때문이다.

학계에서 6·25전쟁사를 연구해 온 대표적 학자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정용석 명예교수조차 그 선택적 사용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생각하면 육사 출신에 3성 장군으로 퇴역한 뒤 내리 3선의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는 황 의원의 투철한 안보관은 자타가 공인한다.

그렇다고 연세대 법학박사 출신에 행정고시를 거쳐 30년 가까이 올곧게 공직에 몸담아 온 이 시장의 안보관이 마치 자신보다 못하다는 폄훼에 가까운 ‘용공성(?) 말꼬리 잡기’는 자칫 두터운 관록을 쌓아 온 그의 정치적 자충수가 되지는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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