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으레 따르는 일련의 생활 방식은 오랜 옛날부터 집단 구성원들의 필요에 따라 생성되고 유지돼 왔으나, 그것이 굳어진 이후에는 해당 관습의 기원이나 의미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많다.

관습은 사회의 유대를 강화하고 동료 의식을 심어 주며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으로서 도움을 주기는 하나, 관습의 보수성은 변화나 새로움에 대해 편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오늘 소개할 영화 ‘미스 포터’는 실존 인물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여성 동화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첫 사회 진출 시기를 그리고 있다. 그녀는 여성의 권리가 존중받지 못했던 시대에 돈과 명예보다는 사랑과 일을 택하며 자신 앞에 놓인 기성세대의 관습에 도전했다.

파란 조끼를 입은 귀여운 토끼 ‘피터 래빗’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친숙한 캐릭터다. 마치 사람처럼 이야기를 하는 장난꾸러기 피터 래빗, 벤자민 바니, 제미마 퍼들덕 등 동화 속 동물친구들은 베아트릭스 특유의 섬세한 삽화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피터 래빗이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그녀는 세상의 관습을 거부하며 집안에서는 말 안 듣는 딸로, 사회에서는 대인관계 부적응자로 살아가야 했다.

우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그녀가 ‘미스 포터’였던 시절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즉, 결혼 전 미혼의 삶을 다루고 있다. 귀족사회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던 19세기 말 영국, 베아트릭스 포터는 40대 초반까지 미혼으로 살아가며 오직 동화 제작에 전념한다.

뼈대 있는 집안의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당대 여성들의 목표였던 것에 반해 그녀는 오직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30대 중반 출판사를 찾아 자신의 작품을 출간하기까지, 그녀는 말 안 듣는 딸의 전형이었다. 생각이 맞지 않는 부모님과의 언쟁으로 집안은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녀에게 사회적 관습에 맞춰 사는 삶이란 죽은 인생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일에 골몰했으며 모든 노력과 에너지는 일의 성취만을 위해 쏟았다.

그 결과 그녀는 부모 밑에서 기생하며 노처녀로 늙어 갈지도 모른다는 주변의 우려 및 적당히 돈 많은 남자를 남편으로 삼아 평생 가정 안에 안주하며 살아야 했던 당시 여성의 운명을 스스로 이겨 낸다. 그녀는 자신의 열정과 노력으로 인생을 개척하는 시대를 앞선 여성이 된다.

페미니즘적 인생관을 담고 있는 영화 ‘미스 포터’는 당시의 관습에 맞서 홀로서기에 성공하는 독립적인 여성을 그려 낸 작품이다. 그러나 전기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운명의 얄궂은 장난이나 극적인 반전이 안겨 주는 재미는 이 작품에서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작가의 인생 굴곡보다는 그녀의 순수한 동심과 성공 이후의 삶에 포커스가 맞춰지면서 베아트릭스 포터의 진지한 인생관은 다소 희석된 채 영화는 마무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관습에 대항하고 자신의 열정과 집념으로 이뤄 낸 그녀는 성취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녀의 작품 피터 래빗은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세계인들에게 전원의 평화로움과 생의 행복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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