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길에 주저앉아 울고 있다. 그 울음은 지독한 서러움과 고통을 담고 있다. 그냥 모른 척 여자를 지나치기 힘들 만큼 그 울음소리가 발목을 잡는다. 영화 ‘밀양’의 포스터를 보면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리고 우는 여인 뒤에 앉아서 그녀를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다. 그가 보고 들은 우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 ‘밀양’이다.

밀양 입구의 국도. 아들과 함께 죽은 남편의 고향을 향해 가던 신애의 고장난 차가 서 있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 이미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아들과 그녀에게 등을 돌린 사람이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이사를 온다.

신애의 고장난 차를 수리하러 온 종찬과의 첫 만남. 이들은 앞으로 자신들에게 일어날 일을 전혀 예상도 못한 채 함께 밀양으로 들어온다.

밀양에 정착하기 위해 피아노 학원을 연 신애. 이제 통장에 남은 잔고는 몇 푼 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남편이 죽어서 혼자 사는 여자’, ‘불쌍한 여자’, ‘알 수 없는 이상한 여자’라는 자신에 대한 풍문을 잠식시키기 위해 그녀는 ‘좋은 땅이 나와서 곧 계약할거다’라는 이야기를 흘리고 다닌다.

 어디까지나 기죽고 싶지 않아 퍼트린 말이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은 신애는 꿈에도 몰랐다. 있지도 않는 신애의 돈을 노린 유괴범은 그녀의 아들을 납치한다. 그리고 며칠 뒤, 아들은 밀양의 한 강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남편이 죽은 후 신애가 선택한 곳이 ‘밀양’이라는 땅이었다면, 아들을 잃은 후 그녀가 찾아간 곳은 ‘교회’이다.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기도회’에서 신애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마음의 평화를 얻어 주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하다 말하는 신애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아들을 살해한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이 죄인은 신애가 용서하기도 전에 자신이 용서받았다고 말한다. 죄 짓고 교도소에 들어와 하나님을 알게 됐고 눈물로 참회한 결과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용서하기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용서가 무용해져 버렸음을 안 신애는 분노한다.

하나님께서 범인에게, 신애의 허락도 없이, 하나님에 앞서 신애만이 베풀 수 있는 용서의 미덕을 이미 베풀어 버리신 것이다. 어째서, 어떻게 하나님이 그럴 수 있는지 신애는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다.

남편과 아들을 모두 잃어버린 여자, 최후의 안식처라 생각했던 하나님에게도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는 이 여자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대결을 펼친다. 그리고 이 비극적이며 히스테릭한 여인 곁에 노총각 종찬은 동그라미처럼 맴돈다. 늘 네댓 걸음 뒤에서, 부르면 다가서고 밀쳐내면 물러나면서.

2007년 칸영화제에서 배우 전도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겨줘 더욱 유명해진 영화 ‘밀양’은 용서와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그 용서와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지는 않았다.

 입으로 혹은 머리로 구하고 말하는 용서와 화해는 절대로 나약한 인간을 구원할 수 없었다. 오히려 더 큰 고통으로 밀어넣을 뿐이었다.

영화의 후반부 자신을 파괴한 신애가 “살려주세요”를 외치며 찾은 안식처는 하나님이 아닌 주위의 이웃들이었다. 비록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이 돌아간다 할지라도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매순간 만나는 이는 하나님이 아니다.

언제나 말동무가 돼 주고 내 옆에 있어 주는 그런 세상 속의 사람들, 내 옆의 가족과 이웃들이다. 비록 우리 인간은 또 다른 타인에게서 아픔과 고통 그리고 상실을 경험하지만 그것을 치유해 주는 이도 결국은 내 곁의 사람들이다.

어쩌면 용서니 구원이니 하는 말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신애가 종찬에게 밀양의 뜻과 밀양이 어떤 곳이냐고 물어봤을 때, “우리가 언제 뜻보고 삽니까? 그냥 사는 거지예.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예 뭐”라고 했듯이 구원과 용서는 저 멀리 깊은 곳에 있거나 특별한 의식 안에서만 행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우리의 일상이 나와 우리를 용서하고 구원할 것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