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성 변호사(인천경실련 공동대표. 기호일보 독자위원장)

   오늘도 전국에서 수많은 산재로 불쌍한 근로자들이 죽고 다쳤다. 서울의 방화대교 상판에서 작업하던 중국 동포 2명도 산재왕국 한국의 비참한 현실을 피할 수 없었다.

어디 방화대교에서 작업하던 도중에 어이없이 추락한 중국동포뿐일까. 1년에도 수천 명이 죽고 다치고 그로 인해 줄줄 새고 있는 사회적 비용에 대해서는 이미 관련 전문가들에 의해 각종 통계로 증명된 지 오래된 일이다.

산재왕국의 오명을 갖고 있는 한국의 정부가 개성공단에 대해 국제적 기준을 적용하겠다고 북한과 협상 중이고 최근에는 관계부처에서 최후통첩을 한 상태이다.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국제적 기준의 내용을 요약해 보면 우리나라 기업들이 안심하고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제반 안전조치를 북한이 책임지고 취해야 하고 이번에 일방적으로 북한 근로자들을 철수시켜 남한 기업들이 입은 각종 피해에 대해서도 북한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정부의 주장은 일반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기업활동에 있어서는 전혀 무리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며 지극히 당연한 요구이다. 정부의 이러한 기준제시와 북한에 대한 이행촉구는 많은 국민들로부터도 상당한 공감을 받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측의 ‘최고 존엄’ 권위에 도전하고 인격을 모욕했다는 비경제적 이유로 일하고 있는 근로자를 모두 강제로 공장 밖으로 몰아 내는 행위는 결국은 기업활동을 그만두라는 말이고 우리 기업의 존폐를 좌우할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아야 할 문제는 현재의 개성공단의 문제가 해당 기업인들은 전부 소외된 채 우리 정부와 북한의 정치협상으로 해결되어야 할 성격인가 하는 점이다. 개성에 입주한 기업의 상당수가 늘 우려했던 일이 결국은 정치적·군사적인 이유로 개성공단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이었다.

 기업의 운명이 기술력에 의해 승패가 판가름 나는 시장이 아니라 정치적·군사적인 영향을 받아 결정된다고 하면 그 결과에 대해 해당 기업들이 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북한을 상대로 제기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요구사항이 국민들의 동의를 받고 있는 점을 떠나 우리 국내 사회 및 산업 환경을 되돌아 보면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1년에 수천 명이 죽고 다치는 산업 환경은 산재왕국으로 스스로를 부를 정도가 되었지만 산재를 다루는 정부의 노력에도 매년 재앙은 되풀이되고 있고 근로자들의 세계 최장 근로로 인한 피해와 후진국 수준의 청렴지수를 보여주는 사회의 심각한 부패문제, 세계적인 자살률 등 문제는 우리 스스로에게 다시 한 번 국제적 기준이 어떤 의미인가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와 산업경제도 국제적 기준을 제대로 준수하지 못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를 배척하는 정치 이념을 갖고 있는 상대방에게 국제적 기준을 제시하고 그 이행과 준수를 촉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느냐 하는 말이다.

중용(中庸) 제15장 「행원자이장(行遠自邇章)」에  ‘行遠必自邇, 登高必自卑’라는 구절이 있다. 먼 곳을 가려면 가까운 데부터 시작해야 하고,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한다면 먼저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1910년(경술년) 3월에 여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가 평소 자신을 존경하며 따르던 일본인들에게 내려 준 유묵에도 있는 글이다.

처음 개성공단을 시작한 기본철학은 이 글처럼 일당 독재사회인 북한에게 자본주의 체제를 경험하게 하고 이를 학습하도록 해 점차적으로 국제사회에 문호를 개방하도록 하자는 것이 아니었는지, 그래서 낮은 단계의 산업분야부터 진출을 시작하고 공단의 개발을 점차 확대해 나아가기로 한 것이 아니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개성공단은 기업환경뿐만 아니라 근로작업환경도 국제적인 수준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노력으로 산업재해도 없고 근로자의 복지가 세계적인 수준이 되는 친인권적 근로환경과 세계 최고의 복지구조를 갖추어 주는 것이야말로 북한도 더 이상 정치적·군사적 이유로 근로자들을 철수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진정한 의미의 국제적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현재의 개성공단 문제의 해결은 공단을 시작한 원래의 초심으로 복귀하는 자세에 달려 있다. 국내 기업의 희망대로 기업인들이 원하는 기업활동을 시작하게 하는 것이 먼길을 가고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정부의 협상 담당자들이 우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국제적 기준을 제시하면서 최후통첩을 보내는 것은 자기모순적인 태도임을 지적하면서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 멀리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를 갖고 존폐위기에 놓인 우리 기업인들의 애타는 심정을 품어주길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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