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 전국을 뜨겁게 달구는 음악축제가 있다. 바로 록(Rock music) 페스티벌이다.

안산밸리 록 페스티벌, 지산 월드 록 페스티벌,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 등과 함께 국내 록 페스티벌의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는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까지. 이들 콘서트로 여름의 열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른다.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강렬한 사운드의 록음악은 자유로움과 열정, 청춘의 패기와 저항정신 등을 상징하기도 한다.

 오늘 소개할 작품 ‘테이킹 우드스탁’은 록 페스티벌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1969년 개최된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탄생을 담고 있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청년문화의 힘을 보여 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냉전의 시대. 숨 막히는 이념논쟁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을 몰고 왔고 이후 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미국의 1950~60년대는 좌절, 갈등, 억압이라는 사회적 불안이 내재된 시기라 할 수 있다.

명분 없는 전쟁을 중단하고 기성세대의 반성을 촉구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반전과 평화’라는 구호 아래 점점 커져갔고, 이는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을 통해 미국 전역에, 그리고 나아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된다.

1969년 8월 15일부터 18일까지 4일간에 걸쳐 펼쳐진 이 축제는 평화와 반전을 외치는 젊은 히피족들이 중심이 돼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정신을 음악으로 표출한 문화운동의 출발점이었다. 이 역사적인 공연은 시골마을의 평범한 청년 엘리엇에 의해 탄생할 수 있었다.

서른 살의 엘리엇은 자신의 꿈은 현실적인 이유로 접은 채 부모와 함께 허름한 모텔을 운영하며 살고 있었다.

파산 위기에 직면한 모텔을 살려낼 방법으로 엘리엇은 우연히 이웃 동네에서 열리기로 한 ‘록 페스티벌’의 취소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에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면 손님을 유치해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엘리엇은 마을 사람들을 설득해 페스티벌 유치에 성공한다.

초기 기획 당시 밥 딜런의 고향인 우드스탁에서 개최될 공연이 주민들의 반발로 취소되면서 엘리엇이 살고 있는 시골마을의 베델 평원에서 개최됐다.

 변변한 편의시설은 고사하고 식수 부족과 형편없는 음향시설에도 반전을 외치는 50만 명의 청년들과 히피들은 4일간의 공연을 자신들의 목소리로 가득 채우게 된다.

영화 ‘테이킹 우드스탁’은 자유, 평화, 화합, 사랑이라는 모토 아래 펼쳐진 4일간의 짧은 음악축제 기간 동안 큰 깨달음과 내적 성숙을 이뤄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의 핵심은 공연이 진행된 상황과 그 이후의 펼쳐진 청년문화운동이 아니다. 록 페스티벌의 열정적인 무대를 보고자 하는 관객이라면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이 작품은 무대 위 퍼포먼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겪게 되는 엘리엇과 주변의 다양한 인물들 간의 갈등과 사건에 더욱 주목한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이안 감독은 전설의 공연을 가능케 했던 개개인의 열정과 변화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그들은 자신 안에 숨겨 온 열정을 깨닫기도 하고 인간관계를 통해 서로에게 배우며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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