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을지로 연합뉴스 건물에 헬멧을 쓴 걸그룹 크레용팝(엘린·소율·금미·초아·웨이)이 나타나자 "와~ 크레용팝"이라며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30-40대로 보이는 남성들은 "크레용팝 팬이에요. 사진 한 장 찍고 싶어요"라고 너도나도 말을 건넸다.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한 올여름 가요계, 크레용팝이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데뷔 시절 방송 출연의 어려움으로 거리에서 노래해 '게릴라 돌', '밑바닥 돌'로 불리던 이들은 이제 연예인들까지 호응하는 스타로 '신분' 상승을 했다.

이들의 '무기'는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신곡 '빠빠빠'와 헬멧을 쓴 채 엇박자로 '통통' 튀어오르는 동작이 포인트인 일명 '직렬 5기통 춤'.

배우 유아인은 최근 트위터에 직접 '직렬 5기통 춤'을 추는 사진을 올렸고, 밴드 십센치의 권정열 등 인디 뮤지션들도 호응했다. SNS와 유튜브 등에서도 이들의 춤을 따라 한 패러디물이 넘쳐났다.

 

음원 차트 100위권 밖에서 출발한 '빠빠빠'가 순위 역주행을 펼치며 차트 1위를 찍은 건 하나의 '사건'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저희 노래가 음원 차트 1위를 했어요. 순간 믿기지 않아 소리를 질렀죠. 처음에는 누가 장난치는 건 줄 알았어요." (웨이)

이날 인터뷰에 자신들의 전매특허인 헬멧을 쓰고 등장한 크레용팝은 "팬들의 응원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게 느껴진다"며 "너무나 감사하다"고 벅찬 소감을 밝혔다.

"예전에는 스케줄이 별로 없어서 일정표가 '텅텅' 비어 있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 자리가 가득 찼네요. 하하." (소율)

지난해 7월 데뷔곡 '새터데이 나이트(Saturday Night)'로 활동하던 당시에는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이들에 대해 가요계는 '신선하다'는 반응이었지만, 대중적 사랑을 받기에는 낯설었던 것.

TV 일정을 잡기 쉽지 않았던 이들은 주로 유튜브와 SNS 등을 통해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고, 지난 6월 발표한 '빠빠빠'가 차츰 반응이 오기 시작하면서 결국 '잭팟'을 터뜨렸다.

"최근 가장 스케줄이 많을 때는 하루에 9개였어요. 야구장 공연, 호텔 수영장 파티, tvN 예능 프로그램 'SNL 코리아' 녹화 등이었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밥도 못 먹고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일정을 소화했어요." (웨이)

소율은 "데뷔했을 때는 팬이 3명이었다"며 "지난해 싱글 '댄싱퀸(Dancing Queen)'으로 활동할 때 방송 출연이 적어 아쉬운 마음에 게릴라 콘서트를 많이 했다. 그 이후로 '삼촌 팬'들이 많이 생겼다"고 지난 1년을 되돌아봤다.

"저희 나름대로는 차근차근 밟아 올라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갑작스러운 인기에 '무섭다'기 보다는 오히려 행복한 마음입니다."(소율)

이미 '직렬 5기통 춤'은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여러 차례 패러디할 정도로 방송가 '핫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방송인 김구라는 'SNL 코리아'에서 이들과 함께 '직렬 6기통 춤'을 선보였고, 이수근·김종민·은지원은 '세 얼간이'에서 '직렬 12기통 춤'을 췄다.

"'점핑, 점핑!'하는 가사에 맞춰 서로 상반되게 뛰는 춤을 스태프가 만들어줬어요. 그런데 몸만 뛰다 보니 심심하기도 하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저희끼리 손동작을 추가했습니다. 그랬더니 더욱 입체적인 느낌도 들고, 엔진 피스톤이 움직이는 듯한 모양이 돼 '직렬 5기통 춤'이 만들어졌어요." (초아)

멤버들이 서로 엇갈려 뛰는 이 춤의 특성상, 처음에는 동시에 뛰어오르지 않도록 박자를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단다. 정확한 박자를 위해 메트로놈(노래의 박자를 측정하는 기구)을 틀어놓고 연습했을 정도.

웨이는 "엇박자다 보니 속으로 '점핑, 점핑!' 가사를 되뇌면서 춤춰야 했다"며 "쇼케이스 후 각종 무대에 오르면서 안무를 틀릴까 봐 걱정도 많았다"고 말했다.

 

직렬 5기통 춤

 

TV뿐만 아니라 지방 각지로 종횡무진 오가며 활동하는 이들에게는 늘 대규모의 '삼촌 팬'들이 따라다닌다. 흔치 않은 콘셉트를 소화하는 이들이 부끄러워할까 봐 팬들도 똑같이 트레이닝복에 헬멧을 쓰고 박자에 맞춰 '직렬 5기통 춤'을 따라 춘다고 한다.

"지방 무대였는데 우리가 도착하기 전 예정보다 리허설이 빨리 시작된 적이 있어요. 팬들이 기다리다가 무대에 직접 올라서 리허설도 해줬죠. 안무를 다 아니까요." (엘린)

소율은 "팬들은 자신의 직업을 가리켜 '크레용팝 팬'이라고 하더라. 감동을 받았다"며 "늘 함께 무대를 즐겨주는 것 같아서 든든하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크레용팝은 인기에 힘입어 최근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와 음반 유통에 관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미 해외에서도 반응이 오고 있어 본격적인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

멤버들은 최근 방문한 중국의 한 행사장에서는 현지 팬들이 헬멧을 쓰고 한국어로 응원해 놀라웠다고 한다.

또 빌보드 K팝 섹션은 "싸이의 뒤를 이을 스타 탄생"이라고 주목했고, 월스트리트저널 등 다른 해외 매체도 이들을 조명했다. 코믹한 콘셉트에 유튜브 동영상을 중심으로 인기를 확산하는 '바이럴(Viral) 패턴'이 '여자 싸이' 같다는 평이다.

'여자 싸이' 이야기를 꺼내자 멤버들은 입을 모아 "아직 1년밖에 되지 않은 신인인데 싸이 선배와 비교해주셔서 너무 영광"이라며 "항상 싸이 선배가 롤 모델이라고 생각했다"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기회만 된다면 다양한 나라의 무대에 서고 싶어요. 유튜브 영상을 보니까 외국 분들도 좋아해 주시던데, 크레용팝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엘린)

 

 

크레용팝은 '빠빠빠' 이후 활동할 후속곡 준비에 여념이 없다. 지금의 인기를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도 상당할 터. 특히 '빠빠빠'가 멤버들의 가창력보다는 코믹한 콘셉트에 방점을 찍은 노래였기에 더욱 그렇다.

"후속곡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정말 준비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어찌 보면 '코믹한 아이'로만 보일 수 있잖아요. 저희를 처음 접한 게 그런 모습이니까요. 앞으로는 지금껏 노력한 모습과 아직 보여 드리지 않은 재능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음 음반에는 발라드도 담을 겁니다." (웨이)

초아는 "보컬이나 퍼포먼스 부분에서는 아쉬움도 있다"면서도 "이제 데뷔한 지 갓 1년이 지났다. 앞으로도 보여 드릴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일단 크레용팝을 알리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독특함과 신선함으로 주목받았지만, 더 큰 장점은 사람들이 우리의 무대를 보고 에너지와 힐링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노래가 밝고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게 많거든요. '신선한 그룹'보다 대중에게 활력을 주는 '국민돌'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입니다." (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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