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정치적 견해와 개인적 소회를 밝히는 데 있어 매우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민감한 질문에 요리조리 빠져나가길 잘한다고 해서 ‘기름장어’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입을 열었다. 미국 언론계에서 가장 유력한 ‘아시아 정보통’으로 손꼽히는 전 LA타임스 논설실장 톰 플레이트와의 대담집 「반기문과의 대화」에서다.

대담집은 반기문 총장과 저자 톰 플레이트가 2010년부터 2012년 사이, 두 시간씩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진행한 대담을 비롯해 각자 부인을 동반하고 사적으로 만나 나눈 여섯 차례의 대화를 담고 있다.

반 총장에 관해 쓴 다른 책들이 그의 어린 시절부터 유엔 사무총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면, 이 책은 유엔 사무총장이 되고 난 후의 이야기를 본인의 입을 통해 전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지닌다.

책 속의 반 총장은 톰 플레이트와의 대화를 통해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24시간 전화 대기 중이며, 하루에 10차례 연설을 하고 이코노미석을 타고 재난 현장에 달려가는 유엔 사무총장의 삶을 이야기한다. 또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분쟁과 대립, 지구온난화와 북한 문제, 안전보장이사회 개혁 등에 대한 소신도 밝힌다.

과거에 대한 회상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테면 2009년 방북 일자까지 확정한 상태에서 북한 측 요청으로 회담이 불발된 사연과 2001년 김대중 정권 시절 외교부 차관에서 해임됐을 때의 심정 등을 접할 수 있다.

여기에 겸손과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여 주는 반 총장이 취임 때부터 비판적이던 서구 언론의 집중포화를 극복하고 기존 유엔 조직 및 직원들과의 갈등과 반발을 이겨낸 이야기도 흥미롭다.

덧붙여 반 총장의 아내 유순택 여사와 케네디스쿨 스승이었던 그레이엄 앨리슨, 조지프 나이 교수의 인터뷰도 함께 실어 지근거리에서 바라본 그의 모습까지 담았다.

반 총장의 삶과 철학을 글로 정리한 저자는 말미에 이렇게 글을 맺는다. “우리에게는 사무총장이 있다. (…) 적어도 우리에게는 유엔 꼭대기에서 일주일에 7일, 하루 24시간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일꾼이 있다. 왠지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는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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