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흐름은 빠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요즘은 1초라는 눈 깜박할 시간에 동영상, 전자책 그리고 사진들을 데이터로 전송하는 시대다.

디지털 시대의 강점인 속도와 역동성은 예전에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현실 속에서 매일매일 새롭게 업데이트한다. 반면 이러한 새로움은 모든 것을 가볍게 스치듯 흘려보내야만 한다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진지하게 오랫동안 바라보고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이제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돼 버렸다. 이제 우리는 한 번 보고 좋은지 나쁜지, 내 스타일인지 아닌지,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 등을 쉽게 규정짓는 디지털적인 감성에 익숙해져 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철저히 반(反)디지털적인 감성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아름답고 소박한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무공해 사랑영화를 만나 보자.

이 영화의 원제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로 중국의 거장 감독 장이머우의 1999년도 작품이다. 도시에서 직장을 생활하던 아들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급히 시골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아버지 장례식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유인즉, 어머니가 병원에서 마을 길목까지 관을 둘러메고 걸어오는 전통 장례 절차를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루가 꼬박 걸리는 먼 길을 매서운 한파 속에서 이동하기란 쉽지 않은 일.

게다가 마을에는 힘 좋은 젊은이들도 없었다. 이런 여러 가지 현실적인 이유들로 간소한 절차를 제안한 이장과 아들의 설득을 어머니는 완강히 거절한다. 아들은 어머니의 단호함에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음을 느낀다.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문제 등으로 복잡한 심정을 뒤로하고 잠자리에 들려던 아들은 부모님의 오래된 결혼사진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산세를 배경으로 찍은 소박한 사진. 젊은 연인의 모습. 이렇게 이야기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부모님의 사랑이야기를 그려간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1960년대), 도시에서 시골마을로 온 스무 살의 교사 아버지와 마을 토박이였던 열여덟 살의 어머니는 첫눈에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연애결혼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 젊은 두 남녀는 수줍고 조심스럽게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하고 키워 나간다.

그러던 중 아버지는 정치적인 문제에 얽혀 도시로 연행되듯 가 버렸고, 어머니는 단풍 위에 흰 눈이 쌓일 때까지 매일매일 간절한 마음으로 마을 입구에서 아버지를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재회한 두 사람은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한다.

이런 애틋한 부모님의 사랑을 떠올린 아들은 전통 장례 의식이 “집으로 오는 길을 잊지 말라”는,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당부임을 깨닫고 어머니의 말씀대로 전통 장례를 치를 것을 약속한다.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그리고 화려한 특수효과나 스펙터클한 장면은 나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깊은 공감과 감동을 준다.

이는 영상을 담아내는 감독의 방식과도 닿아 있다. 현실은 건조한 다큐멘터리와 같은 흑백 영상으로, 그러나 과거는 오히려 총천연색의 아름다운 색채를 담아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의 감정을 느리지만 아름답게 포착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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