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는 바람은 음악으로 관객에게 진한 감동을 전하는 것이죠. 온전히 관객들을 위한 무대, 앞으로도 미추홀오페라단은 ‘시민 오페라단’이란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는 노력을 계속할 겁니다.”

지역 안팎에서 손꼽히는 성악가이자 벌써 10년째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미추홀오페라단’을 꾸려 오고 있는 이도형 씨를 지난 13일 만났다. 앞서 그가 2003년 창단한 미추홀오페라단은 2006년 ‘돈 조바니’를 시작으로 매년 대형 오페라 작품을 선보이는 등 크고 작은 무대를 통해 시민들에게 성악의 감동을 전하고 있는 인천의 음악단체다.

이도형 단장은 “이탈리아 유학 전후로도 계속 인천에서 지냈지만 활동근거지는 서울이 될 수밖에 없었다”며 “어렵게 공부했기에 늘 마음 한곳에는 내가 가진 것들을 고향에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오페라단 창단 즈음을 회상했다.

조금씩 지역 활동을 넓혀 가던 그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지인의 제안으로 2003년 오페라단 창단을 겸한 첫 공연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를 올렸다. 당시만 해도 오페라를 즐기는 층이 두텁지 않아 소극장 공연으로 시작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1천 석이 넘는 대공연장 공연이 성황을 이룰 정도다.

올해는 창단 10주년을 맞아 지난 6월 70여 명의 공연자가 함께하는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려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 단장은 “창단 이후 오페라를 어려워하는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찾아가는 공연부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오페라 극, 극에 흥미를 더한 각색에 공을 들였다”며 “이제는 진심으로 오페라에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관객들이 늘어가는 것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년 금전적인 고민을 지속해야 한다. 인천시의 지원과 기업 후원을 받아 매년 아슬아슬하게 공연을 올리는 수준. 워낙 많은 인원이 투입돼야 하는 오페라 극의 특성 때문이다.

이 단장은 “기업의 후원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점에 시민후원 CMS를 도입했다”며 “금액이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시민 후원을 통해 힘도 얻고 더 좋은 공연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매 공연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는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들 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음악’을 가지고 누군가와 감동을 나눌 수 있는 일을 쉽게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미소지었다.

앞으로도 이 단장은 감동이 있는 무대, 완성도가 있는 작품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미추홀오페라단은 오는 11월 연간 3차례 정기공연의 일환인 ‘우리 가곡의 밤’으로 시민들 앞에 선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허황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오페라 전용극장을 갖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꿈”이라며 “음악의 꽃이자 종합예술의 극치인 오페라가 항상 공연되는 극장은 내가 처음 음악을 하면서부터 꿨던 꿈이고, 그 꿈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뤄질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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