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무모함’으로 비춰졌을 제 젊은 날의 결정이 지금 이 자리까지 있게 해 준 자양분이 됐습니다. 이제 50대에 들어선 만큼 그간 내가 받아들이고 또 지켜온, ‘연극의 예술적 가치’를 전수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겁니다.”

인천을 넘어 일본에서까지 자신의 연극지론과 지평을 넓혀 가고 있는 이재상 연출가. 인천연극협회장, 극단 MIR 레퍼토리 대표, 일본 극단 M.J.T ATMAN 예술감독 등 다채로운 직함을 가진 그는 30년 연극인생의 베테랑 연극인이다.

지역 안팎에서 실력파 연출가로 손꼽히는 그의 연극인생은 지난 1982년 시작됐다. 20대 초반 시문학 공부의 연장이라 생각하며 발을 들인 연극은 인생의 지표를 바꿔 놨다고. Dolce소극장의 청소부터 시작한 그는 7년 후 인천시립극단 배우가 되고, 또 그 3년 후에는 극단 ‘즐거운 사람들’을 결성해 서울로 걸음을 옮긴다.

이 씨는 “시립극단 단원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됐지만 내 꿈인 연출가 대신 배우로 인생이 끝나겠다는 두려움이 생겼다”며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시립극단을 나와 만든 극단은 5년 만에 나를 연출가 반열에 올려놨다”고 회상했다. 당시 그의 극단은 서울국제연극제 초청공연을 비롯해 최수종 주연의 연극 ‘서울열목어’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이후 그는 ‘미쳤다’는 주위의 만류에도 다시 인천행을 택했다. 제작자들의 입김이 강한 연극시스템은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몰라도 연출가로서는 공허했다”는 그의 소회처럼 ‘하고 싶은 연극’과는 괴리가 있었다.

고향에 돌아온 이 씨는 프리랜서 연출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실험을 지속, ‘이재상 스타일’을 만들어 간다. 더 늦기 전에 극단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2007년에는 극단 MIR 레퍼토리를 설립하기도 했다. 현재 MIR 레퍼토리는 인천은 물론 전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고전극 레퍼토리 공연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여기에 그는 도쿄노비레퍼토리 시어터에서의 수년간의 워크숍을 통해 인연을 맺은 일본 제자들과 극단 M.J.T ATMAN을 꾸려 가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인천에서 가장 바쁜 연극연출가로, 또 희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 씨는 2011년 인천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우현예술상’을, 2010년에는 한국연극협회 올해의 자랑스러운 연극인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묵직한 존재감을 알렸다.

이 씨는 “내 나이 서른, 서른다섯의 도전이 없었다면 레오니드 아니시모프 예술감독 같은 국외 거장과 교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며 “연극을 시작한 지 꼭 30년 만에 국내가 아닌 국외에서 극단을 이끌고 있다는 것도 내게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앞으로의 꿈은 아시아, 전세계의 연극인들과 함께하는 연극단체를 만드는 것이다. 이 씨는 “개인적으로는 MIR 레퍼토리와 ATMAN의 입지를 다지는 것부터 아시아, 세계의 연극인들과 연대해 ‘MIR Asia’, ‘MIR World’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천연극계를 위한 정책제안과 그 활성화를 위한 고민과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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