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는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었지만 사후에 재평가돼 주목받는 예술가들이 있다. 한 나라와 도시를 대표하는 간판스타가 돼 수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고, 더 나아가 자신의 작품들을 모티브로 다양한 상품들은 재탄생시키는 예술가. 구스타브 클림트도 그런 인물이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예술의 도시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클림트는 생전에도 이미 유명한 화가였다. 기존의 아카데미적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열망했던 그는 ‘분리파’의 기수가 돼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열어가는 것에 앞장섰다.

그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사랑과 이별, 죽음과 탄생을 그려갔다. 그런 그의 작품들은 당시 지나친 장식주의와 너절한 외설로 여겨지며 비난의 대상이 돼 후원금이 끊길 위험에 처했던 고난을 겪어왔지만, 21세기는 그를 낭만과 사랑의 거장으로 칭송하며 그가 그려낸 육체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에 열광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인 영화 ‘클림트’는 구스타브 클림트의 마지막 인생을 담고 있다.

한 명의 예술가의 이름을 걸고 그의 삶을 일정 부분 다루고 있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는 기존의 자전적 성향의 영화들과는 그 궤를 달리한다.

화가의 일생을 다루지도 않으며 그의 천재성 및 화풍에 대해 초점을 맞추지도 않는다. 오히려 실존 인물의 삶에 가공의 이야기를 첨가해 화가가 죽음의 순간 느꼈을 감정과 혼란들을 감독 라울 루이즈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제시할 뿐이다.

56세의 나이에 스페인 독감으로 병실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 화가. 영화는 죽음으로 침전하는 그의 영혼을 통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삶의 편린들을 희미하고 혼란스러운 화가의 의식상태로 보여 준다.

이 확실하지 못하고 모순된 의식들은 이후 ‘레아’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면서 정점에 이르게 된다. 세기말의 혼돈과 긴장감이 감돌던 1900년. 파리의 만국박람회에 출품한 작품으로 금메달을 수상한 클림트는 축하파티에서 프랑스 무희이자 여배우인 레아를 소개받게 된다.

환상의 뮤즈이자 욕망의 현신인 그녀는 클림트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영감을 끊임없이 일깨워 준다. 그러나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그는 한 명 이상의 자신과 레아와 마주하게 되고, 이는 그에게 정신분열을 일으켜 예술적 방황 또한 최고조로 내몰게 한다.

이 작품은 생과 사, 그리고 그 사이를 헤매고 있는 클림트의 예술적 영혼을 포착해 낸 작품이다. 죽음이 밀려오는 긴 시간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을 갈망했던 예술가의 영혼.

 하지만 끝내 구할 수 없었던 사랑의 희망.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클림트의 작품 속에 표현된 에로티시즘과 황홀경을 슬픔과 희망을 품은 숭고함으로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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