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단 ‘예술무대 산’ 조현산(44)대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올 여름 한국에 없었다. 브라질 인형극축제와 홍콩 공연으로 이어진 긴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독특하고 서정적인 기법으로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예술무대 산은 지난 2010년 예술단체와 공연장을 연결해 주는 경기문화재단 상주단체로 선정돼 양주에 둥지를 틀었다. 꼬박 23년간 외길을 걸어온 인형극 장인은 포천 산속의 인형제작실과 양주 창작사무실을 오가며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브라질에서 3주 동안 공연하고 돌아와 인천공항에서 짐만 바꿔 홍콩으로 바로 출국했죠.”
홍콩 공연을 마친 뒤 곧바로 지방으로 향했던 그는 “추석 전까지 정신이 없었는데 지금은 숨을 돌리는 중”이라며 활짝 웃었다.

숨 돌리고 있다고는 했어도 조 대표는 지난 19일부터 이천시에서 시작된 ‘우주비행사’ 공연과 ‘달래이야기’ 전일본 투어 공연 사이 잠깐 시간을 내 인터뷰에 응했다.

예술무대 산의 대표작 ‘달래이야기’는 6·25 동족상잔의 한가운데 놓인 여자아이가 주인공임에도 전쟁에 대한 직접 묘사를 배제한 채 몽환적인 리듬으로 스토리를 이끌며 깊은 여운을 안기는 무언극이다. 몇 해 전 세계 유수의 인형극이 참가하는 스페인 토로사페스티벌에서는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국내외 공연만으로도 바쁘지만 조 대표는 지역에 녹아들기 위해 정기공연과 더불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해 왔다. 특히 아동 인형극 체험과 유치원 교사 대상 인형극 수업은 어디에도 볼 수 없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경기북부지역 어린이들은 손수 만든 인형과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교사들은 저마다의 인형극을 완성해 교육 현장에서 생생하게 활용한다.

얼마 전에는 양주문화예술회관 복도에서 아기자기한 극소규모 인형극들을 펼쳐놓고 축제를 개최해 지역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조 대표는 경기문화재단의 지원이 예술가와 지자체의 상생을 가능케 한다고 했다. 인형극의 특성상 제작과 연습을 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했고, 공연장은 콘텐츠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윈-윈’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예술무대 산의 작품은 기존의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까닭에 처음 접했을 때 어려워하는 관객이 적지 않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빠져들어 열혈팬을 형성한다.

“지역에서 공연을 선보인 초기에는 객석에 몇 분 안 계셨는데 지금은 매 공연마다 빈 좌석이 없어요.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공연을 올리니까 이제는 저희를 믿고 찾아주시는 것 같습니다.”
조 대표는 공연 자체에 담긴 의미와 교훈도 중요하지만 감동적인 공연을 같이 봤을 때 그 기억이 아이들에게 큰 재산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마음이 전해져서인지 양주문화예술회관에는 최근 가족단위 관객이 부쩍 증가했다.

예술무대 산은 신작 준비에도 한창이다. ‘그’라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해 일상에서 느끼는 심상을 판타지로 풀어가는 ‘그의 하루’라는 작품이다.

“저희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인형극이야말로 진짜 3D라고 해요. 시적 압축이 있는 인형극의 매력을 느껴 보세요.”
양주에서 보내는 하루 속에 한국적 인형극의 세계화를 도모하는 ‘그’ 조 대표의 꿈이 영글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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