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새로이 건국한 NFA 정부는 1년 중 단 하룻밤, 3월 21일을 ‘퍼지데이(purge day)’로 지정하고 12시간 동안 절도·강도·강간은 물론이고 살인범죄까지도 허용한다.

국가가 나서 범죄를 허용하는 날이 있다면, 그 하루를 제외한 나머지 날들은 범죄율이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극단적 상상에서 시작된 정책이다.

퍼지 데이의 보복을 두려워하게 된 사람들은 행실 자체를 조심하게 되고 실제로도 2022년의 일상은 무척이나 평온하다. 그 단 하루를 뺀다면 실업률과 범죄율이 1% 이하라는 이상적인 세상이다.

제임스(에단 호크 분)는 퍼지 데이로 인해 승승장구하는 최첨단 보안시스템 구축 회사의 영업사원. 남부러울 것 없는 호화 주택에서 가족들과 살아가는 제임스는 퍼지 데이 당일, 예년과 같이 일찍 귀가해 빈틈 없는 보안시스템을 작동시킨다.

하지만 아들 찰리(맥스 버크홀더)가 이 보안시스템을 해제하고 퍼지의 희생양이 돼 도망 중인 흑인 노숙자(에드윈 호지)를 집 안으로 피신시킨다.

곧이어 흑인 노숙자를 놓아주면 살려주겠다는 백인 사냥꾼들의 협박이 이어지고 가족들은 노숙자를 잡아서 백인들에게 던져줘야 하는가를 놓고 갈등을 벌인다. 결국 가족들은 쫓고 쫓기는 사투를 벌여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지난 7일 개봉한 미국 영화 ‘더 퍼지’는 지옥의 하루를 만듦으로써 천국과 다름없는 나머지 날들을 만들고, 소수의 약자를 희생함으로써 다수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빈민층과 장애인 계층을 제거하려는 수단’이라고 비난하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외려 옹호론자들의 ‘폭력 발생을 하룻밤으로 축소했다’는 주장에 가려진다. 또 영화 속 부자들은 완벽한 보안시스템 안에서 실황 중계되는 살육과 폭력사건들을 보며 파티를 벌인다.

영화는 실상 이민이 늘고 범죄율과 실업률이 점점 높아져 가는 현대사회, 좁게는 선진국의 불안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제거해 나갈 때 어떠한 비극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목의 ‘퍼지’는 숙청, 제거라는 뜻으로 정화(淨化)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감독이 주장하는 메시지를 생각하면 역설적인 제목인 셈이다.

300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이지만 지난 6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9주 상영기간 동안 20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마이클 베이가 제작에 참여했다. 청소년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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