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도심을 배경으로 괴팍하고 꼬장꼬장한 남자가 끊임없이 장광설을 쏟아내는 작품을 보게 된다면, 그리고 그 끝없는 수다의 내용이 억지스러우면서도 묘한 설득력을 갖고 있어 어느새 듣는 이들을 몰입시키고 있다면, 한 번쯤 이 감독의 영화가 아닐까 의심해 봐야 한다.

외모 콤플렉스에 빠진 신경질적인 독설가 캐릭터와 꼭 닮은, 종종 자신이 작품 속에 등장하기도 하는 인텔리 코미디의 거장 우대 앨런 감독이다.

2차 대전 중 독일 나치의 박해를 피해 이민 온 유대인 출신의 이 감독은 올해 78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작품으로 여전히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왓에버 웍스’는 2009년 작품으로 제목이 말하는 것처럼 ‘뭐가 됐든’ 인생은 풀려가게 돼 있다는 앨런식 인생관을 보여 주는 영화라 하겠다. 그러나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을 장착한 이 영화 또한 그 주제를 이끌어 내는 과정은 염세적이기 짝이 없다.

환갑을 넘긴 보리스는 꼬질꼬질한 패션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신경질적인 언변으로 주변을 압도하는 사람이다. 왕년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후보에도 올랐을 만큼 학문적으로는 자신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은퇴 후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다.

이제 그에게 남은 탁월한 재능이란 자신의 염세적 세계관으로 주변을 암울하게 만드는 것과 타인의 단점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해 가차없는 혹평을 날리는 것뿐이다.

성격이 이러하니 아내는 진작에 그를 떠난 상태. 자신의 신세를 비관해 자살을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쌩쌩하게 주변을 오가며 신경질적인 말투를 입에 달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지적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얄궂은 인생은 이 괴팍한 노인을 느닷없는 인간관계로 밀어넣는다. 20대의 풋풋한 활기가 넘치는 여성 멜로디와의 만남은 그의 심술궂고 단조로웠던 일상을 흔들기 시작한다.

서로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은 지금껏 자신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세상을 좀 더 다양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되고 이를 통해 행복의 의미에 좀 더 가깝게 다가서게 된다.

영화 ‘왓에버 웍스’는 우디 앨런 감독의 초기 작들과는 달리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화법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주인공 보리스는 종종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며 관객들에게 자신의 인생관을 펼쳐 보인다.

그는 인생의 무의미함, 성선설에 동의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 사회의 악, 인간 조건과 그 실존적 비참함, 삶의 부조리 등을 쉴 새 없이 떠들어 댄다. 또한 기독교적 신을 포함한 종교의 절대성을 조롱하고 운명론을 비웃는다.

 인생관은 수많은 우연의 연속일 뿐, 절대적이며 영원한 것은 허상의 다른 이름이라며 냉소한다. 그러나 그의 염세적 인생론이기도 한 우연성의 연결고리는 질서의 붕괴와 혼란스러움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결국 이는 자신을 가두는 틀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가치와 참 행복 찾기를 가능케 함을 멜로디와의 만남을 통해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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