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국성 변호사/기호일보 독자위원장

 2013년에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용어를 꼽자면 아마도 ‘신뢰’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정치인이 사용한 것도 이유이기도 하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서로 믿고 신뢰하자는 노력들이 어느 해보다도 2013년에 많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그동안 어렵게 쌓아올린 민주주의 가치들이 침해되는 도전을 경험하고 있다. 민주적 기본질서를 기초로 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가치체계가 이를 보호할 책무가 있는 국가기관과 공무원, 그리고 고위층들에 의한 부정행위로 훼손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과거 중국 역사상 가장 유능한 공직자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 정자산(鄭子産)·밀자천(密子賤)·서문표(西門豹)라고 한다. 이들은 사마천의 『사기』의 「골계열전」을 통해 그 이름이 역사적으로 전해지고 있고 이들이 공직자로서 유명해진 이유는 바로 ‘신뢰’이다.

춘추시대 정나라 공직자였던 정자산은 어찌나 현명하고 지혜롭게 여론을 널리 파악해 사태의 해결을 잘 해 나가는지 백성들로부터 속이고 싶어도 도저히 속일 수 없는 공직자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노나라 출신의 공직자였던 밀자천은 백성을 존경하고 어진 정치를 베풀고 늘 백성과 상호 교감을 통해 인을 행했다. 공자마저도 그의 선정에 감탄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고, 어부들도 밀자천이 좋아하는 고기를 잡으면 밀자천이 좋아하는 고기를 자기들이 먹을 수 없다면서 잡은 고기를 놓아 주었을 정도로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위나라 공직자였던 서문표는 백성을 괴롭히는 권세가들을 철저히 응징해 백성의 존경을 받았던 사람이다.

백성으로부터 과다한 세금을 징수해 사적으로 유용하고 권력을 남용해 힘없는 백성의 딸들을 바다의 제물로 받치던 권세가와 무당을 모두 제거해 힘없는 일반 백성을 괴롭히는 악습의 뿌리를 뽑았다고 한다. 법을 집행하되 일반 백성을 악습으로부터 지키고 권력자들의 횡포를 제거하도록 법을 운영한 것이다.

사마천은 위 정자산에 대해 속일 수 없을 정도로 능력과 신뢰가 있는 공직자라는 의미로 不能欺(불능기)라고 했고, 밀자천은 너무나 존경스런 마음에 차마 속이지 못할 정도의 공직자라는 의미로 不忍欺(불인기)라고 했으며, 힘없는 백성을 괴롭히던 권력자들을 법의 이름으로 엄하게 다스려 백성들의 존경과 신뢰를 받은 서문표를 不敢欺(불감기)라고 표현했다.

사마천이 3不欺로 표현한 정자산·밀자천·서문표의 리더십은 그 수단과 방법이 서로 다르지만, 각자의 권한을 일반 백성을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행사했고, 권력자들의 권한 남용에 대해서는 엄하게 다스려 일반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현재의 한국사회의 가장 문제는 정치·경제·사회 등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존경과 신뢰를 받고 있는 지도자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2013년에 발생한 국가기관과 공무원들의 선거관련 부정행위에 대해 국가가 엄정한 법 집행을 하지 못하는 현상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권력의 신뢰를 파괴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사회의 민주적 가치 체계를 보호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권력과 지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사마천은 ‘나라의 안정은 도덕의 힘에 있는 것이지 냉혹한 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도덕의 힘은 곧 공직자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같은 말일 것이다. 나라의 모든 공직자들이 사마천의 3불기와 위 경고를 되새기면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해 보는 연말연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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