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의 위치에서 살아 본 적이 있는가? 다수의 그룹에 포함되지 못한 소수의 삶. 정치, 종교, 생활 방식, 취향 등 어떤 것이 됐든 소수는 다수에 비해 소외되고 외면받기 마련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소수적 성향이 다수의 관심 밖일 경우 이는 그저 무시돼 버리겠지만, 그것이 다수의 불편한 관심을 받게 될 경우 소수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다수 중심의 사회 속에서 위험한 대상이자 제거해야 할 존재가 돼 버린다.

오늘 소개할 영화 ‘싱글맨’은 1964년 발표된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009년 톰 포드의 시선으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삶의 아이러니와 성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한 남성의 불안한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62년 10월, 케네디정권의 미국은 카스트로 지배 하의 쿠바와 전쟁의 기운에 휩싸인다. 냉전의 시대, 쿠바를 포함한 구 소련과 미국은 서로를 향한 핵 미사일을 조준해 둔 채 팽팽한 긴장의 나날을 이어갔다.

이에 세계는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를 핵전쟁의 공포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러나 50대 중반의 한 남성에게만은 전쟁의 공포를 찾을 수 없었다. 이미 그의 삶은 죽음보다 더 혹독한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채워져 있었다.

전쟁의 공포가 채 식지 않은 11월의 어느 아침, 조지는 자신의 공허한 인생에 마침표를 찍기로 한다. 16년간 진심으로 사랑해 왔던 연인의 사고사 이후 그의 삶은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만이 가득했다. 매일 아침 사랑하는 이 없이 홀로 눈을 뜬다는 것은 더없는 고통이었다.

 그에게 의미있는 시간이란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속에서만 유효했다. 연인의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던 자신의 위치, 동성을 사랑한다는 것이 마치 무서운 저주나 질병처럼 취급되던 당시의 숨막히는 생활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자신의 본질을 속이고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마음을 터놓고 마음껏 사랑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가 세상에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은 지금, 그의 결심은 돌이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자신을 소외시킨 세상이었지만 그는 마지막 하루 동안 주변을 용서하며 조용히 생을 정리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인 조지는 자신의 수업을 통해 소수자에 대한 불편한 시선과 억압적 분위기에 대해서 항변하기도 한다. 다수가 규정하는 소수 문화에 대한 그들의 불편한 인식과 실재 없는 두려움은 결국 소수에 대한 억압으로 돌아오는 폭력적인 현실에 대해 그는 장광설을 늘어놓아 보지만 관심있게 들어줄 이 없다는 생각에 곧 입을 다물어 버린다.

그러나 모든 것을 끝내기로 결심한 그날, 그는 뜻밖의 전환점을 맞이하며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삶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자살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라는 듯 겸연쩍게 웃으며 유언장을 불태우는 조지는 새벽 3시, 희망에 찬 새날들을 기대한다. 그러나 얄궂은 운명은 다시 타오르는 생생한 삶의 의욕 앞에 쓸쓸한 마침표를 찍어 버린다.

2009년 개봉한 영화 ‘싱글맨’은 여러모로 화제가 된 작품이다. 우선 연기력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형적인 영국 신사 콜린 퍼스의 출연과 함께 그의 동성애 연기가 이슈가 됐다.

그러나 이보다 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이 작품의 감독인 톰 포드였다. 영화 ‘싱글맨’을 통해 영화감독으로 첫 데뷔를 한 그는 감독이기에 앞서 유명 디자이너로 더욱 친숙한 이름이었다

. 명품 브랜드 구찌를 지금의 명성으로 이끌어 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톰 포드의 첫 작품은 그가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여전히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이 작품의 동성애 코드 또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는 동성애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 차이를 보였다.

원작 소설가인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톰 포드 두 사람은 모두 동성애자라는 점에서 작품에 자전적 색채가 묻어나긴 하지만, 이셔우드는 마이너리티인 주인공의 입을 통해 지적인 필체로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견해를 풀어낸 것에 반해 톰 포드의 ‘싱글맨’은 화려한 이미지의 향연이 주제를 압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뛰어난 디자인적 성취와 감각적인 영상미를 톰 포드만의 영상문법으로 창조해 낸 색다른 결과물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두려움과 외로움에 대한 한 인간의 고뇌는 콜린 퍼스의 섬세한 연기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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