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甲午年) 새해가 밝았다. 희망을 얘기해야 할 새해 벽두, 본보는 안녕하지 못한 인천시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누군가는 그들의 얘기를 듣고 응답할 것이란 기대에서다.

특히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다. 또 45억 아시아인의 축제가 인천에서 열린다. 모두가 장밋빛 희망을 이야기하고 대형 이벤트에 취해 있다면 지난해 말 들불처럼 번졌던 ‘안녕들 하십니까’에 대한 물음은 공허한 메아리일 수밖에 없다.

적어도 이번 지방선거에 인천시민을 위해 출사표를 던지려는 후보자라면, 또 그들에게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유권자라면 안녕하지 못한 우리 주위의 목소리에 한 번쯤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 <편집자 주>

#이광호씨 (도원주택재개발조합장·59세)

   
 

이광호(59)도원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장은 새해가 밝았지만 이렇다 할 포부나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동면상태인데다, 이제 폐허나 다름없는 동네가 언제 개발될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인천시 중구청에서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이곳은 2010년 11월 사업시행인가가 나며 곧 대규모 공사가 시작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국내 부동산 시장은 언제 깨어날지 기약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미 지쳐버린 주민들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조합을 해체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매몰비용 47억 원이 해결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오는 6월 있을 지방선거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이 조합장은 “선거에서 누가 시장이 되든 조합원의 답답한 심정을 좀 달래주고, 시원스러운 답도 좀 내놨으면 좋겠다”며 안녕하지 못한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했다.

#변선옥 씨 (서구 신현동 주부·35세)

   
 

“아이들이 안녕한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세 아이의 엄마인 변선옥(35·서구 신현동)씨는 지난해 말부터 거의 매주 서구청과 인천시청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가한다. 그의 큰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공장 증설 문제로 지역주민과 마찰을 빚고 있는 SK인천석유화학과 불과 180여m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변 씨는 학교 인근에 발암물질을 생산하는 화학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하고부터 ‘SK공장 증설을 반대하는 인천 엄마들의 모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는 “비록 아무것도 모르고 힘없는 주부들이지만 내 자식이 안전하지 못하다면 그 누구보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며 “대기업이 공장 증설을 중단하고 시가 사업 승인을 취소할 때까지 ‘응답하라’ 외칠 것이다”라고 했다.

#최승근 씨 (연수구 연수동 주민·65세)

   
 

4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하다 은퇴해 공무원연금을 받는 최승근(65·연수구 연수동)씨는 올해부터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나이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노인복지는 보편적 논리가 아닌 ‘선택과 집중’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들어선지 몰라도 지난해 유독 ‘고독사’한 노인들에 관한 뉴스를 많이 접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한 빈곤노인에 대한 사연이 남 얘기 같지만은 않았다. 국가나 시 정부에서 노인 모두를 돌볼 수 없다면 그들을 위한 맞춤형 복지를 해야 한다.”
최 씨는 모든 노인이 다 똑같이 복지 혜택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당장 생계가 걱정인 노인도 있을 수 있고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들도 있을 테니, 이들에 대한 공적인 지원이 더 먼저란 얘기다.

그는 또 “노년의 삶은 단순히 수명을 연장한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며 “(자신은)경로당에 가서 어울리기에 아직 젊고 일할 여력도 있다”고 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노인 표를 의식한 ‘사탕발림’ 공약이 아닌, 진정성 있는 공약을 내놓으라는 당부다. 최 씨는 “노인들에게 그저 ‘안녕한지’ 묻기보다 삶이 행복한지 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동현 씨 (계양구 직장인·37세)

   
 

30대 직장인 김동현(37·계양구)씨도 최장 기록을 갱신한 철도노조의 파업 사태에 안녕하지 못하다. 서울이 직장인 그는 매일 아침 출근길 ‘지옥철’에서 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불편해도 노조의 주장대로 철도가 민영화되면 요금이 더 오를 수 있다는 불안감에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

김 씨는 “파업은 노동자가 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인데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있는 대부분의 직장인은 쉽게 엄두도 내지 못한다”며 “정부가 좀 더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신을 비롯해 주위의 많은 직장인들이 마흔도 안 되는 나이에 ‘명퇴’를 고민하게 되는데 오죽하면 해고를 무릅쓰겠느냐는 이유다.

그는 “더 이상 언제 직장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없이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가 좀 나아졌으면 한다”고 했다.

#박동근 씨 (인천중부모범운전사·57세)

   
 

운전경력 21년차인 박동근(57)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베테랑 택시기사다. 인천중부모범운전자회 소속인 그는 벌써 수년째 교차로에서 매일 아침 교통정리 봉사를 하고 있다.

박 씨는 그동안 이 같은 봉사활동을 하면서 나름 프라이드도 가졌지만 요즘처럼 택시운전이란 직업에 회의를 느낀 적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 말 택시요금은 3천 원으로 인상됐지만 수입은 200만 원에서 늘 제자리다. 오히려 택시요금이 올랐는데 서비스 수준은 그대로라며 젊은 승객들에게 핀잔을 듣기 일쑤다.

지금은 택시기사 중에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들도 많다는 그는 “아직도 택시가 승차거부 또는 난폭운전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속상해했다.

하지만 택시기사들이 질 높은 서비스와 안전운전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처우 개선이 먼저라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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