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모든 일에 계획을 세우고 알람을 맞춥니다. 그게 이상한가요? 성실한거지.”

오전 6시 기상, 밤새 흐트러진 침구 다림질, 6시 35분 샤워, 드라이기로 욕실 물기 제거, 8시 옷 입기, 8시 30분 출근, 8시 42분 횡단보도 건너기 등등.

영화 ‘플랜맨’의 주인공 한정석(정재영 분)은 자고 일어나 침구를 다림질하고 샤워를 한 뒤에는 샤워커튼의 물기마저 드라이어로 모두 말려야 성에 찬다.

출근해 건널목 건너는 시간, 편의점에 들어서는 시간도 모두 손목시계의 분 단위 알람에 맞춰져 있다. 이름처럼 모든 일을 자신이 정해놓은 정석대로 처리해야 하는 강박증, 결벽증 환자다.

정석은 매일 같은 시간 찾는 편의점에서 자신처럼 삼각김밥 줄을 맞추고 손이 벗겨지도록 손을 씻는 여자(차예련 분)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만 그녀는 정석의 계획적인 면이 싫다며 거절한다.

짝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정석은 평생 처음으로 ‘무계획적인 삶’을 결심하고 그녀의 후배 소정(한지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소정은 하루 만에 정석의 인생을 뒤집어 놓는다.

급기야 출근 8년 7개월 26일 만에 처음으로 지각을 한 정석. 알람 없는 그의 인생은 순식간에 꼬여 가지만, 웬일인지 정석의 주변인들은 환호성을 보낸다. 더 나아가 소정은 밴드 오디션에 함께 나가자는 황당한 제안을 한다.

새 영화 ‘플랜맨’은 1분 1초까지 계획대로 살아온 남자가 계획에 없던 짝사랑 때문에 인생 최초로 무계획적인 인생에 도전하며 벌어지는 코미디영화다. 평범하지 않은 남녀가 크고 작은 소동을 겪으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또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놓았다.

영화의 강점은 전반에 흐르는 따뜻한 감성과 그간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캐릭터를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또 강박증과 결벽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자신같이 소화한 정재영은 물론, 거침없는 발랄함을 뽐내는 한지민의 연기도 호평받을 만하다.

다만, 선 ‘코미디’ 후 ‘감동’으로 마무리되는 한국형 코미디영화의 정석에 충실한 점은 못내 아쉽다. 특히 후반부에 보여지는 주인공의 잔혹한 과거는 강박증과 결벽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면치고는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2006)’에 조감독으로 참여하고 여러 차례 단편작품으로 존재감을 드러낸 성시흡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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