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그리고 최근에 등장한 아이언맨까지, 이들은 모두 막강한 화력을 장착한 슈퍼 영웅들이다.

악의 무리와 맞서 싸우는 놀라운 힘과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결국엔 승리하고야 마는 이들의 행보는 언제나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초능력에 가까운 파워와 정의의 의지는 동경해 마지않는 영웅만의 면모라 하겠다. 하지만 가공할 만한 파워도, 신무기도, 심지어 그 어떤 특별한 능력도 가지지 못한 이가 영웅을 자처한다면 어떨까? 보통 사람만도 못한 초민망한 능력을 정의를 위한 도구라 여기며 열심히 뛰어다니는 슈퍼 히어로가 있다.

그 이름은 ‘그리프’. 언뜻 봐선 절대 슈퍼 히어로임을 알 수 없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 칭송할 만하다.

어두운 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을 여성 혼자 걸어가고 있다. 그녀를 덮칠 듯한 괴한의 그림자가 가까워질수록 여성의 불안과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이때 어둠을 뚫고 나타난 누군가가 있었으니, 바로 정의의 사도 그리프다.

괴한에게서 여성을 무사히 지켜낸 뒤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은 채 자신의 길을 가는 이 남자, 영웅답다. 그러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여인의 비명소리. 고맙다는 인사 대신 그가 받은 것은 ‘스토킹을 그만하라’는 경찰의 경고였다. 무슨 사연일까?

평소 소극적인 그리프는 유년시절부터 현재까지 왕따로 지내고 있다. 외지에서 홀로 생활하는 그에게 세상은 늘 척박하기만 했다. 언제나 자신을 못난이, 괴짜 그리고 놀림감으로 바라보는 사회 앞에서 그는 차라리 투명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런 그의 욕망은 말도 안 되는 투명 수트 제작에 매진하게 만들고, 이후 투명 수트를 완성했다고 자부한 그리프는 그 옷을 입고 밤마다 거리를 배회하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나섰다.

간간이 발명품을 입고 자신을 괴롭힌 동료를 놀려주기 위한 비밀스러운 활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는 정의의 편에 서서 노력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그의 망상일 뿐, 현실에서 그리프는 투명인간이 아닌 너무도 또렷이 잘 보이는 괴짜에 지나지 않았다.

세상은 그에게 ‘왜 어른스럽지 못하냐’고 핀잔하기 일쑤였고, 냉정한 현실 앞에 그리프는 영웅으로 살아갈 동력을 잃게 된다. 자신의 꿈을 접고 세상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그리프의 모습은 하나둘 현실과 타협하며 버려온 우리의 지난날 꿈과도 같아 씁쓸함을 더한다.

그러나 절망과 희망은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다고 했던가! 그의 마음을 읽어 주고 이해하는 단 한 사람, 멜로디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며 성장해 나간다.

범접할 수 없는 신과도 같은 슈퍼 히어로만이 영웅은 아니다. 그 도약이, 날갯짓이 비록 미약하더라도 부족한 자신을 이겨내려는 노력 자체가 값진 것이다. 이것이 우리들 각자가 지닌 슈퍼 파워일 것이다.

남들과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누가 봐도 지금 걷고 있는 그 길이 빙 둘러 멀리 돌아가는 길이라 해도 그 걸음걸음이 자신에게 힘과 행복을 준다면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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