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자문한다. “모두가 다 시민을 위한다고 하는데 나는 과연 어떤 시민을 위한다는 것이냐?”

   
 

답은 이랬다. “이 사회에서 희망을 잃어가는 힘들고, 어렵고, 아픈 시민들을 위해 내가 있는 것이고 그것이 정치의 몫이다. 그 시민들이 내가 정치에서 열정을 가지고 뛸 수 있는 힘 아니겠느냐.”

민주당 윤관석(53·인천 남동을)국회의원은 자신을 등반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정치라는 산을 열정을 가지고 등반하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정상을 향해 산을 오르다 보면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갈림길도 만나 혼란을 겪기도 하고, 골짜기와 넘기 힘든 봉우리 때문에 시간을 지체하기도 합니다.

힘들 때 주저앉고 포기하고도 싶지만 시민과 함께한다는 열정으로 고비고비를 넘다 보면 희망이 보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묵묵히 산을 오르는 등반자, 그런 등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인천지역 국회의원 중 2013년 시민들에게 가장 인상 깊은 활동을 펼친 의원 한 명을 꼽는다면 많은 시민들은 주저 없이 윤관석 의원을 꼽는다.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아서도, 멋들어지고 어깨에 힘을 줄 만한 당의 요직을 꿰차서도 아니다. 지난 한 해 그가 인천시민에게 보여 준 열정이 결코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윤 의원은 2014인천아시안게임과 관련한 예산 확보에서 빛을 발했다.

알 만한 시민들은 “윤관석 국회의원이 없었으면 2014인천아시안게임을 못 치를 것”이라고 할 정도로 지난 연말 인천아시안게임과 관련한 그의 활약상은 눈부실 정도였다.

아시안게임을 코앞에 둔 상황임에도 순조롭게 예산이 확보된 운영예산과 달리 주경기장 건설비는 전임 시장 당시 ‘국비 없이 건설하겠다’는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늘 찬밥 신세다.

하지만 뚝심의 윤 의원이 가만히 지켜만 볼 리 없다.

그는 예산처리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반드시 아시안게임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당 지도부와 동료 국회의원, 그리고 인천시 관계자 등과의 밤샘 논의 후인 오전 8시 30분께 인천 출신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원내대표를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전병헌 원내대표에게 예산 증액 필요성을 역설하며 승강이도 있었다.

윤 의원의 고집스러운 주장에 결국 전 대표는 최재천 예결위 간사를 급파해 재협상에 들어갔고 자체 정책예산으로 주경기장 건설비 150억 원 증액과 애초 정부안 411억 원을 포함한 561억 원의 아시아경기대회 예산을 확보하게 된다.

이때의 긴박함을 그는 축구의 스트라이커로 비유한다. “예결소위 의원은 축구로 말하면 골을 넣는 스트라이커라 할 수 있습니다.

골을 넣기 위해 패스하고 드리블하고 센터링하면서 결국에는 골대를 향해 볼을 차게 됩니다. 저 역시 인천시와 핫라인을 연결하고 당 지도부를 만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황우여 당대표께서 기획재정부를 설득하는 등 큰 역할을 해 주셔서 결국에는 골을 터뜨리게 된 것이죠.”

   
 
이 외에도 윤 의원이 확보한 인천지역 예산은 ▶인천신항 증심 준설 재평가용역 50억 원 증액 ▶로봇랜드 조성사업 30억 원 증액 ▶세계은행 인천사무소 유치에 따른 공동연구사업 예산 10억 원 반영 ▶인천항 갑문 유지·보수비 10억 원 증액 ▶인천대학교 40억 원 ▶세계 책의 수도 10억 � 등 신설과 증액 등을 포함하면 4천억 원이 훌쩍 넘어선다.

이는 인천 예산의 상당 부분을 확보한 것으로, 인천시가 올해 국비 지원을 지난해 대비 24.4%나 증가한 2조213억 원을 확보해 개청 이래 처음으로 국비 2조 원 시대를 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국회의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윤 의원은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3일 황우여(인천 연수)새누리당 대표, 민주당 신학용(인천 계양갑)의원 등과 함께 인천시에서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윤 의원은 법안 발의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다.

국회에 입성한 후 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은 2012년 20건, 2013년 42건 등 모두 62건에 달하고 다른 국회의원들과 공동발의한 법안도 840건에 이른다.

대표적인 법안을 꼽는다면 신문 관련 법안이다.
그가 대표발의한 신문 관련 법안은 ‘신문진흥에 관한 법안’과 ‘지역신문발전법안’, ‘신문구독료 근로소득세 일정 부분 감면법안’ 등으로 현재 법안소위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최근 들어 신문산업이 급속히 사양화되면서 세계적인 뉴욕타임스도 폐간했습니다만, 신문은 민주시민의 교재로도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프랑스나 미국은 신문을 공공재로 보고 지원하는데 그 중 약한 고리가 지역신문입니다. 미약한 지역신문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윤 의원의 열정은 곧바로 평가받았다. 경실련 선정 국정감사 우수의원과 ㈔한국언론사협회 선정 2013년 대한민국 우수의원, 대한민국 인물대상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2013 국정감사 친환경 베스트의원 등에 잇달아 선정됐다.

이처럼 우수한 평가를 받으며 국회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그가 여전히 아쉬운 부분은 지역주민과 가까이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정감사와 법안발의 등을 통해 상을 타기도 했지만 예년에 비해 주민들을 많이 못 만난 것이 못내 아쉬운 부분입니다.

예산심의도 끝나 연초에는 다른 때에 비해 시간이 많습니다. 이번 기회에 지역주민들을 만나 의정활동보고로 평가도 받고 주민들의 안녕하지 못한 사연도 듣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사실 윤관석 의원은 처음부터 인천사람은 아니었다.

서울사람이기는 하나 삶의 중심은 늘 인천에 있었다. 오히려 토박이보다 더 진한 인천사랑이 그의 몸에 배어 있다.

그가 인천에 처음 발을 디딘 1980년대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감시가 국민을 옥조였던 시절이었다.

   
 

20대의 나이에 공업도시 인천에서 그는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조를 함께 만들고 군사독재 철폐를 위한 민주화운동에 전념했다. 5·3 인천항쟁과 87년 민주화투쟁, 그리고 이때부터 시작된 노동자 대투쟁 등으로 연결되는 한국과 인천의 민주화 과정에 그의 피와 땀이 배어 있다.

그 후 40대에 접어든 지난 2004년 정당활동을 시작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거치며 대변인·사무처장·원외지구당 등을 지내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송영길 시장이 당선되면서 인천시 초대 대변인으로 활동한다.

그에게 인천은 어떤 도시일까? “인천은 융합의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20대 청춘에 인천에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을 거쳤고, 40대에는 정당에 입문해 50대에 행정을 경험하며 국회의원이 됐으니 인천은 저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했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게 한 융합의 도시입니다.”

윤 의원은 대변인으로서도 인연이 질기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거치며 대변인을 두 번이나 역임했고 인천시 초대 대변인을 맡았으며, 국회에 들어가서도 당 대변인 중책을 무난히 수행했다.

그런 윤 의원은 인천을 ‘베이스캠프의 도시’라고도 한다. “50여 년 동안 살면서 거친 모든 경험을 모아 국회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대변자, 인천의 대변자, 남동의 대변자로서 의정활동을 하겠다는 각오를 갖게 한 인천은 저에게 기본이자 새로운 출발점을 준비하는 베이스캠프 같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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