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난히 힘들었다. 추석 명절마저 태풍 매미가 싹 앗아갔으니 말이다. 예년 같으면 이맘 때 농촌의 들녁은 오곡이 여물어 황금들판을 이루고 길가엔 코스모스가 만발해 시골을 찾는 도시인들의 마음을 더없이 따뜻하게 해주는 계절이다. 그러나 이번 추석 연휴중 국토의 남동부지역을 덮친 태풍으로 지금 속속 밝혀지는 피해는 천재지변을 넘어 국난에 가까워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무겁다.
 
하긴 이번 태풍에 큰 피해를 입지 않은 고향을 찾은 이들의 마음이 무거운 것은 경제사정이 좋지 않아 지난날 같은 푸짐한 선물을 못한 것도 있지만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한 점은 부모형제들이 있는 농촌의 우울한 표정 때문에서다. 그동안 새벽부터 밤이 늦도록 열심히 일한 농민들에겐 수고의 대가로 그나마 작은 소득은 얻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 농촌은 텅빈 농가가 늘고있는 가운데 일기불순으로 농사마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올 여름은 어찌된 일인지 비가 하루살이 같이 오는 바람에 벼는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쭉정이가 된 게 많은가 하면 일부에선 벼에 싹이 돋아나고 있다고 하니 농민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더욱이 비로 인한 병충해 마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어디 이뿐인가. 고추와 배추 등 밭농사도 마찬가지다. 사과, 배와 같은 과일도 당도가 떨어져 수출마저 못하게 됐다고 하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농림부는 그동안 올 쌀 작황은 9월 날씨에 달렸다고 하면서 흉작이 되더라도 재고량과 의무수입량을 합치면 연간소비량 3천400만석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해왔다. 하긴 수치상으로 보면 쌀 수급에 차질이 없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주무부처에서 이런 태평한 소리를 해야하는지 정말 답답하고 한심스럽기만 하다.
 
아무튼 농림부를 비롯한 정부당국자들은 좀더 진지한 마음자세를 가지고 농촌문제의 해결을 위해 접근해야 할 것이다.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정치권에 얼마나 실망하고 있는지 이젠 달라져야 할 때가 분명하다. 그런데도 신당 싸움과 정파적 이해에 매달려 갈등만 겪고 있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실망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정치의 요체는 바로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우선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민들의 아픈마음을 달래야 할 때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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