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한(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대자보가 붙여졌다. 지난해 12월 10일경 고려대에서였다. 첨단의 SNS 온라인 시대에 과거 오프라인 유산인 대자보가 재등장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대자보의 불길을 당긴 고려대 학생은 대자보를 통해 사회문제(정부의 철도민영화 정책과 밀양 송전탑 건설)에 대한 청년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했다.

 이후 전국의 대학에서는 “안녕들 하십니까?” 또는 “안녕들 못 합니다!”라는 대자보가 이어졌고 사회 곳곳과 언론에서도 비슷한 글들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 대자보의 운명과 영향은 기대를 채우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이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본다. 1

990년대 중반부터 인터넷이 등장했고 2000년대 중반에는 UCC가 휩쓸고 다시 2010년을 경과하면서 스마트폰과 SNS가 사람의 손과 눈을 사로잡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문명의 이기들은 개인의 정치적 지식을 향상시키고 정치적 참여를 증대시켜 대의민주주의 위기를 극복하면서 직접민주주의의 지평을 강화시켜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낙관론에 그리 찬동하지 않는다. 온라인 문명의 이기를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그것 없이도 이미 정치적인 활동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참여의 증대에 주목할 만한 변화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정치적으로 관심이 적은 사람들이 온라인이라는 계기를 통해 새로이 정치적으로 각성하거나 정치영역에 참여하는 데 효과가 크지 않다.

 다 알다시피 온라인 문명의 이기는 정치적인 목적보다는 그 외의 용도로 더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이에 따라 온라인 문명의 이기는 정치적인 참여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무관심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

가령 버스나 지하철, 카페 등에 앉아 있는 시민들의 손에는 십중팔구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다. 귀에 이어폰까지 낀 채 스마트폰으로 SNS를 하거나 각종 동영상을 보는 것이다.

모두 다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이 스마트폰 때문에 옆에 앉은 연인과 대화도 단절되고 있다.

액정이나 모니터에 나오는 사람과는 소통하지만 중요한 가족과도 대화가 사라진 사회다. 이러한 스마트폰의 일상에서는 정치적인 대화도 확산되기 어렵다.

실제로 SNS는 개인을 동질적인 집단과 매개하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그들 사이에 오가는 반응은 “헐” “대박” “ㅋㅋㅋ”등으로 넘친다.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면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다.

뭐가 헐이고 대박이며 웃기고 좋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스마트폰 문화에서는 지적인 대화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SNS에서 이른바 외계어까지 난무하면서 의미있는 대화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이런 일상과 달리 선거와 같이 중요한 공간에서도 SNS의 정치적 효과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선거에서까지 효과가 없다면 SNS는 천덕꾸러기를 면치 못할 것이다.

지난 대통령선거에 대한 여론조사결과를 분석한 논문을 작성하면서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선거에 대한 정보를 얻은 유권자는 TV나 다른 매체를 통한 것보다 수적으로 훨씬 더 적었던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선거에 대한 정보를 접한 유권자는 다른 매체를 통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투표참여나 후보선택에 관한 영향을 입었다.

이러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변화 때문인지 오랜만에 오프라인으로 나온 대자보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자보 운동이 온라인으로 퍼져나가지도 않았다.

이번 대자보 등장이 온라인 시대가 가져온 유행의 한 사례로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어떨까? 요새는 보채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폰이 손에 쥐어진단다. 앞으로 스마트폰으로 놀이와 검색은 쉬워지지만 정작 중요한 소통과 사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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