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그것을 대처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어렵기로 소문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은 연주자들을 위기상황으로 내몰아버리는 작품이다.

단 한 번의 쉼 없이 40분을 연주해야만 한다는 것은 연주 중 음이 맞지 않을 때 악기를 재조율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음을 뜻한다. 이때 연주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곡을 망쳤다며 그만두는 게 맞을까? 어쩔 수 없으니 자신의 파트에만 충실한 채 끝마치는 게 정답일까?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은 어긋나거나 삐걱거려도 멈추지 않고 불협화음 속 하모니를 찾아가야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이 음악을 소재로 우리네 인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영화가 있다. ‘마지막 4중주’이다.

뉴욕에서 팀을 결성해 25년간 전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 중인 현악 4중주단 ‘푸가’는 가족과도 같은 끈끈함으로 훌륭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음악의 메인을 담당하는 제1바이올린을 중심으로 이를 받쳐 주는 제2바이올린, 중간음을 담당하는 비올라의 균형미, 그리고 묵직하고 깊이 있는 음색의 첼로가 모여 현악 4중주의 아름다운 선율은 완성된다.

그러나 뜻밖의 비보는 이들을 흔들어 놓는다.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세 멤버의 대학 은사였던 첼리스트 피터가 멤버들에게 자신은 더 이상 공연을 계속할 수 없음을 통보한 것이다. 그는 최근 파킨슨병을 진단받았다. 느려진 운동신경과 손 떨림 등을 동반한 초기 증상이 이미 나타난 그에게 연주 투어는 불가능해 보였다.

자신을 대신할 첼리스트를 영입해 계속해서 공연을 이어가라는 스승의 바람과는 달리 이 한 번의 어긋남은 연쇄적인 도미노가 돼 팀의 분열을 가져온다. 새 멤버 영입을 계기로 팀 내 권력관계를 재정립하자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제2바이올린 주자는 자신도 제1바이올린 파트를 연주할 것을 제안하지만 그의 말은 묵살돼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에 비올라를 연주하는 아내마저 동조하지 않는 것에 커다란 배신감과 상실감에 빠진다. 평온해 보였던 네 사람과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조차 하나하나 자신의 불만과 아픔을 드러내면서 팀은 해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스승과 함께하는 마지막 공연을 목전에 둔 현악 4중주단 ‘푸가’는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을까?

하모니와 조화라는 말은 서로 다른 성질과 소리를 조율하고 다듬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영화 ‘마지막 4중주’에서도 25년을 함께한 음악과 인생의 동반자들이 서로의 음이 맞지 않았을 때 이를 조율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처럼 중간에 조율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곡을 연주해야 할 때, 이들은 작품을 풀어가는 방식에서 삶의 불협화음을 조율할 실마리도 찾게 된다. 연주 중 소리가 어긋날 때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란 서로의 소리를 보듬으며 곡을 완성하는 것이다.

 불협화음 속에서도 부딪히고 화합하는 과정 그 자체가 최고의 연주인 것이다. 이는 주변과의 조화를 통해 자신을 깎고 다듬으며 살아가야 하는 인생과도 닮아 있다. 삶도 음악도 일정 부분의 희생과 수고를 감내하는 것, 그리고 타인의 희생과 배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때 그 소리도, 함께 살아가는 세상도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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