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모습에 100%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는 아마 드물 것이다. 대부분 우리는 조금 더 발전된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살아간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꿈이자 삶의 추진력이다. 그러나 한 번쯤 멈춰 서 생각해 봐야 한다.

내가 그리는 나의 미래는 나의 행복을 위한 꿈인지 허세를 위한 허상인지 말이다. 좋은 간판과 든든한 배경을 발판으로 화려하게 날갯짓하고 싶어하는 허영의 욕망은 타인을 위해 만들어지며, 결국 그 시선을 통해 완성된다.

거액의 빚에 시달리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항공기 일등석과 패션센스의 마무리인 명품 백, 바닥으로 떨어진 현실을 부정한 채 어떻게 해서든 다시 터질 인생 한 방을 위해 없는 주머니를 털어서라도 우아하게 들이키는 마티니 한 잔.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자존심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란 것은 우아한 그녀의 신발 밑창에 들러붙은 껌처럼 떨어지지 않는 허영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오늘은 영화 ‘블루 재스민’을 통해 허영, 그 씁쓸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최고급 포도주를 마시고, 전용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명품 옷과 액세서리들도 한 번 이상 걸치는 일이 드문 재스민은 뉴욕의 최상류층 사모님이다. 그러나 부러울 것 없이 화려한 생활을 즐기던 그 인생은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금융사기 죄로 철창에 갇힌 남편과 함께 그녀를 화려하게 휘감았던 모든 것들도 사라져 버리게 된다.

 이제 그녀가 숨 쉴 곳이란 동생이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집뿐이다. 어릴 때 동생과 함께 입양된 재스민은 모든 면에서 동생보다 뛰어났다. 늘씬하게 큰 키와 금발 머리, 우아한 몸가짐과 차분한 말투, 이 모든 것은 철저히 동생과 비교되며 그녀를 빛나게 했다.

이후 금융계의 능력자 남편을 만나 결혼한 그 삶도 누구나 부러워 할 만한 성공한 인생의 결정체였다. 반면 동생인 진저는 달랐다. “어쩜 넌 그렇게밖에 살 수 없니!”라는 재스민의 탄식은 동생을 떠올릴 때마다 터져 나왔다.

마트 점원으로 일하며 노동자 남편을 둔 여동생의 생활은 동생 그 자신에게는 행복이었지만 언니인 재스민에게는 부끄러움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제 오갈 데 없는 그녀가 갈 곳이란 그토록 끔찍하게 생각해 왔던 동생의 일상에 빌붙는 일뿐이었다.

하루 아침에 달라진 현실, 누구라도 적응하긴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러나 재스민에게 닥친 현실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낯설기만 하다.

노력 없이 누리던 사치스러운 일상은 노동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현실이 돼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신의 남루한 하루를 잊는 방법이란 신경안정제와 술 그리고 헛된 망상뿐이었다. 이제 몇 벌 남지 않은 명품 옷들을 마치 카드 돌려 막듯 돌려 입으며 재스민은 자신의 허영을 채워 줄 남자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신은 너그러이 그녀의 욕망에 부합하는 남성을 또다시 점지해 주고, 재스민은 이 남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새로 써 내려간다.

지나온 시간은 대충 지워 버리고 재스민은 그 위에 새로운 과거를 임기응변으로 세팅한다. 그렇게 다시 한 번 남자, 명예, 부를 손에 쥐게 된 그녀, 이제 며칠 앞둔 결혼식을 치르기만 하면 된다. 재스민 인생의 제3장 ‘돌아온 럭셔리 라이프’는 그렇게 카운트다운에 돌입한다.

영화 ‘블루 재스민’은 우디 앨런 감독의 44번째 영화로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 현대 사회의 덧없는 허영과 욕망을 조롱하는 작품이다.

 79세의 나이에 완성한 이 영화는 올해 3월에 있을 아카데미영화제의 수상후보로도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이는 16조7천억 달러라는 초유의 부채에 시달리며 지난해 국가 부도 위기에 내몰린 미국 사회에 대한 우화이기도 하다.

미국 자본주의의 중심인 황금색의 뉴욕은 바다와 자연의 풍광에 둘러싸인 샌프란시스코와 대비를 이루며 자본으로 둘러싸인 허영과 그 씁쓸한 욕망을 조소한다.

이는 재스민을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을 통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명품 백과 명품 옷으로 치장한 그녀의 우아한 몸짓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스꽝스러우며 처절하기까지 하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는 그 자존심이란 것이 명품이란 이름의 껍데기들뿐이라니! 씁쓸하고 또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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