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최근 우경화하는 일본을 보면서 일제강점기 수난의 역사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역사에서 그 질곡의 단초가 된 것은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협상’에서의 어리석음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76년 2월 27일 한국 최초의 국제조약이 인천 강화도에서 체결됐는데, 조약의 정식 명칭은 조일수호조규로 강화도조약 또는 병자수호조약이라고도 했다.

이 조약은 국제법에 따라 조선과 일본 양국이 대등한 주권국가의 입장에서 체결한 근대적 국제법상의 통상조약이기는 하였지만, 과정은 일본의 무력행위에 굴복하여 반강제적으로 맺은 조약이었고 상호 ‘무관세(無關稅)’를 내용으로 하는 한국 최초의 FTA이기도 했다.

농수산품 위주의 조선과 공업생산품 위주의 일본이 무관세로 무역하면 어떻게 될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조약에 따라 부산이 개항되고 1880년과 1883년에 원산과 인천이 각각 개항되었는데, 쇄국에서 개항이라는 중차대한 문제가 불과 협상 15일 만에 성사된 것도 놀랍기만 한 대목이다.

이 조약을 맺기 5개월 전인 1875년 9월 20일 일본은 ‘운요호’를 통해 무력적 함포시위를 단행, 강화도의 초지진을 단시간 내에 쑥밭으로 만들고 인천 영종도에 상륙하여 약탈과 강간을 자행하였다.

일본은 운요호가 출항하기 전 이미 ‘사건의 수습책’에 관한 자세한 매뉴얼을 미리 만들어 두고 있었는데 “평화적으로 활동 중이던 운요호를 조선이 느닷없이 공격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위권을 발동했을 뿐”이라는 내용을 세계 각국에 주지시켜 피해 보상을 강력히 요구하고 개항을 협상한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교섭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청국과 영국·미국 등 주변 열강들에게 협조를 구한 것은 물론이다.

일본은 1868년 수백 년 동안의 막부 체제를 끝내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단행하여 근대 서양의 체제를 모방했다. 거기에 개항을 전후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일본의 공업은 상품 수출 시장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조선과 무역을 틀 뿐 아니라 종전의 제한도 없애고 본격적으로 무역이 확대되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조선의 희생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운요호 사건으로 기고만장해진 일본은 군함 6척을 이끌고 강화도에 상륙하여 무력으로 위협하는 가운데 1876년 2월 11일 하오 1시 운요호 사건에 대한 조선 정부의 사죄와 배상에 대한 제1차 회의가 열렸다.

다음 날 12일 2차 회담 때에는 미리 준비된 13개 조항으로 된 조약문을 제시하고 ‘10일의 기한’ 내에 회답을 얻지 못하면 양국 간의 국교는 단절된다고 위협하였다.

수모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결국 2월 27일 강화부 연무당에서 조일수호조규에 조인하고 비준서를 교환하고 말았다.

보름 남짓 걸린 상황에서 조선의 위정자들이 졸지에 맺게 된 조약의 의미와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기란 무리였다.

조선 내부에서도 회담에 반대하는 신료들의 비중이 오히려 높았지만 그들을 저지할 군사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저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당시 국제법 하에서는 이와 같은 불평등 조약일지라도 형식적으로 당사국이 합의한 것이라면 유효했기 때문에 강대국들에 의해 이러한 만행이 자행되어 왔던 것이며, 이것이 제국주의자들이 주창했던 ‘적자생존’이었다.

강압과 사기로 한 번 재미를 본 일본은 계속해서 그런 방식으로 국부를 늘리려 했고, 해외에서 얻은 이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점점 더 군국주의화되었다.

상대방의 무지와 약점을 이용한 협박과 기만적 술책에 의한 착취는 결국 그 착취자에게도 파멸을 초래하게 되는 역사적 교훈을 망각했던 것이다.

한국 근대사는 국제사회로 나가는 첫 출발에서부터 일본의 억압에 의해 타율적 입장에 머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문서화되면서 식민지로 전락하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130여 년 전 국제사회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협상에 서툴러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던 우리 사회는 두고두고 그 상처를 되새김질하지 않을 수 없다. 행여 지금도 그러한 전철이 진행되고 있지나 않은지 역사적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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